가루지기 노래 <691> 맛보기가 힘든구만
가루지기 노래 <691> 맛보기가 힘든구만
  • <최정주 글>
  • 승인 2004.02.10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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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뿌린대로 거두기 <9>

“허면, 이년허고 살방애럴 찌면 고태골로 간다는 소문이라도 들으셨소?”

옹녀 년이 혹시나 하고 물었다.

“사내가 오직이나 못 났으면 계집허고 살방애 쪼깨 찧었다고 고태골로 가겄소. 병골 아니면 약골이었겄제요.”

“허면 왜 그런다요?”

“서방있는 계집얼 건들면 꼭 뒤탈이 있습디다. 아직도 날이 샐라면 멀었응깨 한숨 주무시씨요. 군불이나 한 부석 더 넣어주리다.”

박가가 옹녀 년을 흘끔 바라보고는 방을 나갔다. 이내 부엌에서 툭툭 나뭇가지 부러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이고, 고진도 저런 고진이 없구만이. 물건언 사내중의 사낸디, 그 물건 한번 맛보기가 부처님 만내기보담도 힘든구만이.’

옹녀 년이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살려준 은혜를 갚는다는 핑계로, 나중에는 뒤로 빼기만하는 사내한테 오기가 생겨서 억지를 부렸으나, 사내의 심지굳기가 지리산 왕소나무는 저리가라한 것이었다.

‘차라리 내가 아파 누워있는 중도 모르고 주색에 빠져있는 강쇠 놈을 버리고 박포수허고 살끄나? 자기 말로 서방 있는 계집언 싫다고 했응깨, 서방얼 버리고 오면 받아줄 것이 아닌가?’

옹녀 년이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한숨 자고 눈을 떴을 때였다.

박가가 아침 밥상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밥도 한 그릇 국도 한 그릇 뿐이었다.

“어째 밥이 한 그럭 뿐이요? 인자넌 이년허고 마주 앉기도 싫다는 말씸이요?”

“나넌 부석에서 묵었소. 얼렁 드시고 그만 내 집에서 떠나씨요.”

“떠나라고라? 안직도 몸이 부실헌디요? 더군다나 눈꺼정 내려 길이 엄청 미끄런디요?”

옹녀 년이 숟가락을 들다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새벽에 기운얼 쓰는 것얼 본깨, 인자넌 혼자 움직여도 되겄드만이요. 아짐씨헌테 말언 안했제만, 그동안 산에럴 통 못갔소. 가실에 놔놨던 목매도 들러봐야허고라.”

“며칠만 더 몸조리럴 허고 떠납시다. 아니, 딱 사흘만 더 여그서 머뭅시다. 글면 몸이 다 나실 것 같구만요.”

“아니요. 오널 떠나씨요.”

“꼭 그래야 쓰겄소? 아자씨가 인자본깨 참 무정헌 사람이요이. 독허기가 시안 매선 바람언 저리 가라요이.”

“아짐씨가 머라해도 암시랑토 안허요. 억지넌 그만 부리씨요. 그만허면 아짐씨헌테 헐만큼 했소. 오널 꼭 떠나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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