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노래 <693>사내 생각이 나서 왔는가?
가루지기 노래 <693>사내 생각이 나서 왔는가?
  • <최정주 글>
  • 승인 2004.02.12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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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뿌린대로 거두기 <11>

“흐, 아자씨도 양반놈들이나 쓰는 에런 문자속도 알고 그러시요

이. 허나 난 그런 것 모르요. 아자씨가 그냥 좋소. 이렇게 바라만 보고 있는디도 사지가 제림서 몸뎅이가 불덩이가 되요. 눈 딱 감고 나 한번만 보듬아주씨요.”

옹녀 년이 박가의 가슴으로 쓰러지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원했다. 그러나 박가가 싸늘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이 아짐씨가 참말로 은혜럴 원수로 갚을라고 허시네. 사람이 사람 말얼 못 알아들으시네. 안 되겄소. 시방 당장 떠나씨요. 정 못 떠나겄소?”

화를 버럭 내는 박가를 옹녀 년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올려다 보고 있을 때였다. 마당에서 박센, 박센, 하고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눈길에 누굴까, 하고 옹녀 년이 귀를 기울이는데, 눈밭을 밟는 사각거리는 발소리가 마루끝으로 다가왔다.

“박센, 박센, 방에 없소?”

여자가 다시 박가를 불렀다. 그런데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마천 삼거리 주막의 주모였다.

‘저 여편네가 여그넌 무신 일이까? 눈도 오고 손님도 없응깨, 사내 생각이 나서 왔는가?’

옹녀 년이 속으로 생각하며 박가를 올려다 보는데, 아, 방에 없소? 하며 문이 벌컥 열리고 주모가 얼굴을 기웃이 디밀었다.

“아, 아짐씨.”

옹녀 년이 당황하여 소리를 질렀다.

“아니, 자네 여그 있었던가? 호랭이 밥이 안 되고 여그 있었어?”

“박센 아자씨가 이년얼 살려주셨구만이요. 벼랑에서 굴러가지고 꼼짝없이 죽을 몸을 살려주셨구만이라. 어디 그 뿐이간디요? 박센아자씨가 이년의 똥오짐 수발꺼정 다 들어주셨구만이라.”

옹녀 년의 말에 주모가 눈을 새치롬하게 뜨고 방안을 꼼꼼하게 살피다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렇게 살아있는 것을 나넌 죽은 줄 알았구만. 호랭이 밥이 되어도 펄새 됐을 것이고, 늑대헌테 물어 뜯겼어도 펄새 뼈만 남았을 것이라고 나 혼자 눈물 콧물얼 쏟았구만.”

주모가 막상 옹녀 년을 만나니 반가웠던지 울먹울먹 코를 훌쩍이다가 치마를 올려 코를 텡 풀었다.

“헌디, 아짐씨넌 여그 웬일이시오?”

“아, 박센헌테 노리 한 마리럴 부탁했는디, 하도 소식이 없길래 와 봤구만. 방에다 꽃겉은 색시럴 숨겨논 줄언 꿈에도 몰랐구만.”

주모가 슬쩍 박가의 속내를 살피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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