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노래 <694>옹녀 년의 가슴이 철렁
가루지기 노래 <694>옹녀 년의 가슴이 철렁
  • <최정주 글>
  • 승인 2004.02.13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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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뿌린대로 거두기 <12>

느닷없이 들이닥친 주모의 모습에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고 있던 박가가 말했다.

“그 동안 이 아짐씨 땜에 산에럴 통 못 갔소. 지달리고 있으면 베면히 알아서 잡아다 주겄소? 마침 잘 오셨소. 인자넌 이 아짐씨의 몸이 다 나샀슨깨 뫼시고 가시씨요. 나넌 목매럴 보러 산에나 가야겄소.”

박가가 산으로 가는 것이 급했던지 아니면 두 계집들 사이에서 낯들기가 무참했던지 서둘러 방을 나가 망태와 창을 들고 사립을 나가버렸다.

그 뒤에다 대고 옹녀 년이 소리를 질렀다.

“아자씨, 고맙소. 은혜넌 꼭 갚으리다. 재물로 안 되면 몸으로라도 갚으리다.”

그러나 박가는 뒤 한번 안 돌아보고 제 갈 길을 가버렸다. 그 뒤에 대고 옹녀 년이 중얼거렸다.

“사람이 못 난 것인가? 아니면 고집이 고래심줄인가? 병신언 분명 아닌디, 벌려줘도 못 묵습디다.”

그 말을 알아들은 주모가 물었다.

“참말이여? 박센허고 암 일도 없었다는 것이?”

“아짐씨헌테 이년이 멀 얻어묵을 것이 있다고 거짓꼴얼 허겄소?

손으로 만져본깨 물건언 꼬댕꼬댕 일어서는디, 그걸 내 살집에 박아주지는 않습디다. 짐치국만 밤마동 마셨소.”

옹녀 년의 말에 주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긴, 그랬을 것이구만. 박센언 심지가 굳은 사낸깨. 치매만 둘렀다면 이년도 좋다, 저 년도 좋다, 침 질질 흘림서 뎀비넌 조선비나 이선비겉은 양반놈덜허고넌 다른깨.”

“그래서 나넌 양반이 좋소. 양반얼 가차이허면 살방애도 잘 찧어주고, 묵을 것도 안 생기요.”

옹녀 년이 말끝에 치마끈을 조이고, 저고리 고름도 다시 매면서 몸을 일으켰다. 주모가 왜?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갈라요. 더 버티고 있어봐야 박센이 내 속곳을 벌릴 일도 없을 것 같고라, 서방님헌테나 가야겄소. 한 달이나 사내맛을 못 봤더니, 아랫녁에서 당그래질얼 허요.”

옹녀 년이 마루로 나오자 주모가 앞장서서 사립을 나가며 말했다.

“서방님얼 만내야 존 일언 없일 것이구만. 인자넌 똥수발 오짐수발얼 드는 일만 남았구만.” “그건 또 먼 말씸이요?”

옹녀 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방님을 만나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던 것이 와그르르 무너지는가 싶어 다리에 기운이 쑥빠져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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