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노래 <699>“자네 맴이 보살일세.”
가루지기 노래 <699>“자네 맴이 보살일세.”
  • <최정주 글>
  • 승인 2004.02.25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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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뿌린대로 거두기 <17>

제 년은 마천 선비들과 벼라별짓을 다했으면서도 막상 서방님의 연장으로 다른 계집의 밭을 갈았다고 하니, 투기심이 끓어오른 것이었다.

“멀 새삼 그런가? 언제 우리가 그런 것 따지고 살았는가? 요놈만 생각허면 내가 미치고 환장해서 폴짝폴짝 뛰겄구만. 나넌 죽은 목심이랑깨.”

강쇠 놈이 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운 옹녀 년이 인심이나 쓰는 듯이 말했다.

“사내대장부가 한숨언 먼 한숨이다요? 어뜨케던 방도가 있겄제요. 우선언 보부텀 허십시다. 술에 계집에 노름에 빠져 살았으면 몸인들 온전헐 리가 있겄소? 개부텀 한 마리 잡아 묵읍시다. 사내덜 양기럴 돋우는디는 그만헌 것도 없다고 그럽디다. 인월 약방에 가서 약이라도 두어제 지어다가 개 한 마리허고 폭폭 고아 묵어봅시다.”

“글라면 돈이 솔찬히 들 것인디? 자네 많이 벌었는가?”

“서방님, 개 한 마리 고아디릴만큼언 벌었소. 헌깨, 걱정허덜 마시씨요. 가십시다.”

옹녀 년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강쇠 놈이 따라 일어서며 말했다.

“임자, 날 버리지만 말게. 날 버리지만 안허면 자네가 어뜨케 살건, 사내덜얼 집으로 끌어들인다고 해도 암말도 않겄네.”

“별소리럴 다허시오. 서방님언 좋아지실 것이구만요. 이년이 꼭 그렇게 맹글랑구만요.”

“고맙네. 고맙구만.”

“흐, 고말 것도 없는갑소. 아, 지어미가 지아비럴 위허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요?”

“자네 맴이 보살일세.”

강쇠 놈의 목소리에 물기가 섞였다. 옹녀 년이 흘끔 돌아보았다.

“몽뎅이로 얼매나 맞았간디, 그리 심약해지셨소? 내 그놈덜얼 가만 두지 않을 것이요.”

옹녀 년의 말에 강쇠 놈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런 소리 마소. 그놈덜이 어떤 놈덜인디. 각다구만도 못 헌 놈들이구만. 그 놈덜 가차이 해봐야 나올 국물도 없고.”

“허다 못해 허리병신이라도 맹글아 뿌러야지라. 헌디, 그 놈덜 계집덜언 어떻습디까? 요분질언 좀 헙디까? 감창언 들을만헙디까?”

“주모가 그런 소리꺼정 허든가? 사람 무참허게 맹그는구만. 서방놈덜이 맨날 술에 노름에 빠져 살아서 살방애도 별로 안 찧었는개비드만. 쉽게 무너지기는 허데마넌 , 아랫녁언 밍밍허데. 자네겉은 계집은 내가 아직꺼정 만내지럴 못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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