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집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딱 맞구만이. 자네 얼굴을 본깨 서리가 아니라 눈이라도 내리겄구만.”
주모가 옹녀 년의 눈치를 살폈다.
“이년의 가심이 시방 어름뗑이요. 아매 꽃 피는 봄이 와도 이년 가심의 어름뗑이넌 안 녹을 것이구만요.”
“너무 그러지 마소. 사내란 다 그런 것얼. 졸 때넌 지놈의 창새기라도 뽑아줄 듯이 허다가도 한번 맴 변허면 내가 언제 봤다냐, 허는 것덜이 사내덜이닝깨. 으떻게 헐랑가? 때도 되었응깨, 내 주막에서 밥이나 묵고가제.”
주막 앞에서 주모가 인사치레로 말했다. 그러나 옹녀는 한시라도 빨리 서방님을 보는 것이 급했다.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 사내구실은 할 수 있을지, 제 년의 두 눈으로 확인을 해야만 답답한 속이뚫릴 것이었다.
“아니구만요. 밥 염도 없구만요. 서방님부텀 보고 서나서나 들리제요.”
“허면 글던지. 조선비한테랑 너무 원한 갖지 말게. 막상 자네가 먼 일얼 당허면 기댈데넌 그 양반덜 백이 없응깨.”
“아짐씨 말씸 염량해 두제요. 일 보시씨요.”
주모를 주막으로 들여보낸 옹녀 년이 치마귀를 말아쥐고 가지랭이에서 바람소리가 나도록 걸음을 빨리했다. 집이 가까울수록 가슴이 오두방정을 떨었다.
주모의 말대로 서방님이 정말 아랫녁을 못 쓰게 되어버렸으면 어찌할까? 그런 서방이라도 믿고 살아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봇짐을 싸가지고 밤도망을 쳐야할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며 옹녀 년이 제 집이 저만큼 보이는 곳까지 왔을 때였다.
백송사 쪽에서 사내 하나가 무엇인가를 질질 끌고 내려오다가 어이, 하고 불렀다.
그 목소리가 귀에 익어 옹녀 년이 흘끔 돌아보았다.
“하이고, 서방님.”
옹녀 년이 한 달음에 달려갔다. 강쇠 놈이 새끼줄에 목을 묶은 장승 두 개를 끌고 내려오다가 흐 웃었다.
“아니, 서방님. 마천 주막 주모말로는 옴짝 달싹얼 못헌다고 했는디, 괜기찮은 것이요?”
“괜찮기넌? 온 몸이 쑤시고 안 아픈디가 없구만.”
강쇠 놈이 이맛살을 찡그렸다.
“헌디 나돌아댕기시오?”
“안 그러면 얼어죽게 생겼는디, 어쩌겄는가? 삭달가지라도 따올까허고 산에럴 가는디, 백송사 일주문 앞에 요놈이 덜렁 서 있지 먼가? 장작으로 패면 사흘언 때겄드만.”
"그렇다고 벅수럴 빼온다요? 벌 받으면 어쩔라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