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호, 대한민국과 3·1운동
국호, 대한민국과 3·1운동
  • 김명한
  • 승인 2004.02.2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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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빼앗긴 우리의 주권을 되찾고자 온 국민이 하나 되어 3·1만세운동을 한지 85주년이 되는 해이다.

 1919년 당시 우리의 선조는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소리높여 조선독립만세 또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비록 미완의 독립운동이었으나 3·1만세운동의 영향으로 일제는 독립운동가들을 색출하기 위해 온건적 통제인 문화정책을 표방하면서 많은 애국지사들을 투옥하였다.

 따라서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셨던 우리의 뜻있는 선열들은 국내에서의 활동 제약으로 해외로 나가 독립운동을 하게 되었으며, 미국, 러시아 등에서 활동하신 해외 독립운동가들이 뜻을 모아 중국 상해에서 우리의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만일 3·1만세 운동이 없었다면 우리의 임시정부도 없었을 것이며, 임시정부의 탄생이 없었다면 일제에 빼앗겼던 그 시기만큼 역사적으로 우리 나라의 존재는 영원히 없어지게 될 뻔 했었다.

 또한 3·1독립운동이 절정을 이룰 무렵 중국 상해에 수립된 임시정부는 그 해 4월 10일에 임시의정원 개원 회의에서 국호는 ‘대한(大韓)’으로, 정체(政體)는 공화제를 의미하는 민국(民國)으로 각각 의결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

 이어 대한민국 임시 헌장을 제정하여 제1조에서 ‘大韓民國(대한민국)은 民主共和制(민주공화국)로 함’이라고 천명함으로써 1945년 임시정부의 요인들이 환국(還國)할 때까지 약 27년 간 대한(大韓)이라는 나라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고, 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하여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목숨을 바친 것이다.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고 되어 있음을 볼 때 우리의 역사는 단절이 없음을 천명한 것이고, 국민의례를 통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올리면서 나라를 찾아주고 지켜주신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조국, 선진 대한민국을 물려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전라북도 관내에서는 3·1운동 당시 선열들이 보여주었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세를 불렀던 그 장소에서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를 가진다.

 남원시에서는 덕과면에서, 익산시에서는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에서, 정읍에서는 태인초등학교에서, 군산에서는 구암동산에서 만세운동과 일경들의 만행을 재현하고 시가행진을 통해 나라 잃은 설움과 조국의 소중함을 몸과 맘으로 느끼게 하는 행사이다.

 특히 올해에는 임실군 오수면에서 재현행사를 실시한다.

 임실 오수는 3·1만세운동의 소식을 듣고 3월10일 오수초등학교 1학년에서 4학년생들이 고사리 같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학교 운동장으로 나와 오수역까지 독립만세운동을 했던 곳이며, 한 지역에서 31명이라는 많은 인원이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으신 곳이다.

 전국 10대 독립만세 의거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애국의 정기가 서린 이곳에서 젊은이들의 모임인 오수청년회의소 주관으로 재현행사를 추진한다.

 애국이나, 나라사랑 운운하면 나이든 사람들의 몫이라고 애써 외면하는 세대들과는 너무 대조되어 기성세대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나라사랑에는 너와 네가 있을 수 없다.

 이번 3·1절을 기해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독립운동시설물을 찾아 참배하거나 재현행사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애국지사들의 숨결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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