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현상 해소책 없나
이공계 기피현상 해소책 없나
  • 태조로
  • 승인 2004.03.0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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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기피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화두가 된 것이 벌써 여러 해 흘렀지만 올해 2004년에도 수많은 말이 무성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2월 17일 이공계 CEO를 불러 점심을 같이하면서 과거에 힘을 썼던 법조인들은 앞으로 이공계 최고 경영자의 비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현실이 결코 이공계에 불리하지 않다고 격려했고, 2월 20일 KAIST 졸업식에서는 이공계 위기는 양적인 문제라기보다 질적인 문제이고 창의적이고 우수한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는 심각한 문제이며,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획기적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해결까지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동안 각 부처에서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대책이라고 내놓은 안이 많이 있지만 그 실효성 면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 대책이라고 소개된 내용을 보면 이공계 출신의 병역특례, 장학금 지급, 과학교사 육성 배치 등은 일시적인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병역특례야 해당 기간을 거치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 이게 아니다는 판단이 선다면 다시 진로를 바꾸어 버리면 헛일이다. 실제 40대에 들어서 직장에서 고급 간부가 된 뒤 다시 입시를 치러 한의대에 진학하는 사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법시험, 변리사시험 등 진로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하는 사람은 자주 본다.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대책은 근본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인데 왜 대책들은 모두 사탕발림 수준의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 허황된 생각인지 모르지만 상상을 동원해 보자.

기득권 층이 있다. 기득권 층이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면 기득권 층의 하부를 떠 받치는 계층이 필요하고 이공계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계층이 사회구조문제에 눈을 돌리고 자신의 노력, 사회적 역할과 사회구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인식이 달라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참으로 세상이 불공평하다. 노력의 정도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살펴보니 불균형이 너무 심하다.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가 여기 저기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사회진출을 앞두고 있는 세대가 세상을 바라본다. 내가 이공계로 진출한다면 내 신세도 저렇게 한탄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미리 현실을 파악한 그들은 이공계를 피한다. 멋도 모르고 그 길을 택해 간 사람들은 뒤늦게 실상을 알고 늦었더라도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다. 뭘 영 모르는 사람들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방향을 바꾸기에도 늦었다. 이공계에서 신세 타령을 하는 부모는 자기 자식들에게는 절대 자기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된다고 말리고, 부모의 실상을 옆에서 바라본 자식들은 부모와 같은 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탈하는 사람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하자 기득권 층은 불안을 느낀다. 자기 하부를 받쳐주는 계층이 없다면 그들은 더 이상 자기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하부가 무너지면 상부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기득권 층은 심각성을 느낀다.

이탈하는 사람이 많으면 국가장래를 볼 때 큰일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그러면서 사탕을 들이민다. 너네들이 진흙탕길을 가지 않으면 나라가 어떻게 될거냐. 나라를 생각해서 진흙탕길로 들어서라. 애국심을 발휘해라... 제발! 제발 ! 이런 시나리오가 아니길 빈다.

상식으로 이해하듯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결하는 문제는 간단하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이공계를 전공한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문제이다. 이공계의 인력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다면 사탕이 아니라 다른 계층이 누리는 지위의 일부를 이공계로 나누면 된다. 연구자의 신분보장, 기술사의 업무영역 보장으로 사회적 지위 정립, 로스쿨제도 도입으로 과학기술자의 법조계 진출, 현장기술인력과 학교의 인력교류, 발명자 보상 등 근본적이지만 간단한 답을 두고 이상한 사탕만 흔들고 있다. 지금 자라나는 젊은 층들은 머리가 충분히 커졌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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