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가득 메우며 내려앉은 봄햇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반금련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노란 장다리꽃 위에 내려앉아 날개를 퍼득이는 호랑 나비 한 마리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휴 내쉬었다.
찻집 주인 왕노파가 걸레로 탁자를 닦다말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꽃같은 젊은 색시가 웬 한숨인고?”
“저기 장다리꽃을 좀 보세요. 꽃과 나비도 철을 알아 서로 희롱하며 즐기잖아요.”
반금련이 비단수건으로 눈 밑을 훔치며 하얗게 웃었다.
“그 웃음 한번 참 곱다. 사내들이 보면 오줌을 싸겠는 걸.”
“할머니도, 별 말씀을 다하세요. 전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인걸
요.”
“임자가 있으면 대순가? 사내들은 음심이 발동하면 눈이 멀고 귀가 먼다우. 색시는 꽃이구만. 우리 청아현에서 젤 예쁜 꽃이라니까. 눈 먼 나비가 어디 꽃을 가려가며 앉던가?”
“꽃이면 뭐해요? 나이 스물도 안 되어 벌써 시들어 가는걸요.”
반금련이 다시 한숨을 내쉬며 눈 밑에 눈물을 매달았다. 그 모습을 혀를 끌끌차며 바라보던 왕노파가 눈을 크게 뜨고 골목을 내다보았다. 웬일인가하고 반금련의 눈길이 따라갔다. 한 눈에도 풍채 좋은 사내 하나가 후리후리한 키를 비단옷으로 휘감은 채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서문경 나리가 어디를 가실꼬? 내 나이가 스무살만 젊었어도 꼬리를 쳐보련만. 아깝다, 아까워.”
얼굴까지 붉히며 혼자 중얼거리던 왕노파가 문을 활짝 열고 큰 소리로 불렀다.
“서문 나리, 늙은이가 하는 찻집이라고 아는체도 않고 지나가시나요? 섭섭합니다.”
왕노파의 말에 서문경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 찻집 안을 기웃이 들여다 보았다.
“할멈이구려? 매실차 맛이 일품이라고 청아현에 소문이 자자한. 안 그래도 언제 한번 들리려고 작정하고 있었지요.”
“말씀만으로도 고맙군요. 아리따운 세 분 부인들은 여전히 안녕하시겠지요?”
“그럭저럭.”
서문경의 이마가 얼핏 일그러졌다. 노파의 수다가 귀찮던지, 아니면 세 부인들 가운데 누군가가 속을 썩이고 있는 것이라고 반금련은 짐작했다.
“들어오시지요. 제가 맛 있는 매실차를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