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3>물기에 촉촉이 젖은 것이
평설 금병매 <3>물기에 촉촉이 젖은 것이
  • <최정주 글>
  • 승인 2004.03.04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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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금련의 봄 <3>

"눈밑이 거무스레하고, 눈동자가 물기에 촉촉이 젖은 것이 사내한테 굶은 상이라구. 아마 아무리 밥을 먹어도 배가 안 부를 걸. 꽃이 피는 것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새가 날아가는 것만 보아도 가슴에서 벌떡증이 날 걸.”

“제 속에 들어와 본 듯이 잘 아시네요.”

“내가 삼십 년을 그렇게 살았는 걸. 병으로 골골하던 남편이 죽고 이 자리에서 찻집을 한 것이 스물 다섯 해가 넘으니까. 내가 혼자 사는 여자라는 것을 안 사내놈들이 줄을 섰었지. 날 한번 어떻게 해보겠다고.”

문득 왕노파의 눈이 번들거렸다.

“재미 좋으셨겠어요.”

“내가 치마끈을 쉽게 풀었으면 사내 속에 묻혀 살 수도 있었지. 허나 난 그러지 못했어. 그까짓 체면이 뭐라고, 사내들이 덤비면 덤빌수록 치마끈을 조여맸으니까. 팔자려니, 하고 살았어. 허나, 색시는 그렇게 살지 말어. 재미있게 살어. 정조를 지키며 깨끗하게 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죽으면 썩을 살인데 아껴서 뭣하냐구. 결국에는 허망한 평생에 후회만 남는다구. 헌데 색시같은 미인이 어찌 무대처럼 어리벙한 병신의 마누라가 되었을꼬? 더구나 딸내미까지 딸린 홀아비한테 말야.”

“장부자 어른께서 어거지로 절 무대한테 시집을 보냈지요.”

“나도 장부자 소문은 들었구만. 늙은 몸으로 젊은 계집종을 건드렸다고 하던가? 투기 많은 장부자의 마누라가 계집종을 사내종한테 주었는데, 사내 종의 계집이 된 다음에도 밤마다 불러들였다고 하던가?”

왕노파가 네 년이 바로 그 계집종이었구나,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반금련이 시큰둥한 낯빛으로 웃음을 흘리다가 물었다.

“그런 소문이 났었어요?”

“사람 사는 세상에 안 나는 소문이 있남? 장부자의 마누라가 처음에는 까맣게 몰랐다가 영감의 몸이 점점 쇠약해지자 눈치를 채고 염탐 끝에 밝혀냈다고 하드만.”

“정확히도 아시네요. 그랬어요. 장부자 어른이 처음에는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더니, 나중에는 눈에서 눈물을 자주 흘리시고, 귀가 멀더니, 콧물을 줄줄 흘리시고, 끝내는 오줌을 누지 못하는 병에 걸렸지 뭐예요.”

“그것이 계집을 밝히는 사내들이 차례대로 앓는 병이지. 그래도 장부자 영감이 대단한 사람이구만. 그 지경이 되도록 색시를 밤마다 불러들이다니. 아니면, 색시의 요분질이 특별하던지. 헌데 무대는 제 마누라가 밤마다 딴 이불 속에서 자고 와도 가만히 있던가? 계집을 아주 모르는 고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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