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母岳) 아래 봄 풍경
모악(母岳) 아래 봄 풍경
  • 승인 2004.03.0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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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날 햇살이 그득한 남향받이 창으로 다채로운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방음장치가 잘 된 최신식 건물에서 창 밖을 내다보면 소리는 안 들려도 움직이는 그림을 볼 수 있으니 색다른 정취를 맛보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도시를 삭막하지 않게 감싸주는 모악산이 있어 한결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그뿐인가? 모악은 우리에게 여유를 갖게 하고 생각을 살찌우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산이기도 하다.

  6층인 사무실에서 눈길을 조금 아래로 향하면 머잖아 신시가지가 들어선다는 꽤 넓은 벌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저 논들을 이 건물의 바닥만큼만 높이려 해도 제법 큰 산을 여러 개나 허물어야 하리라는 지극히 통속적인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미래의 신시가지를 디자인한다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려낼는지?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이 창문의 모악산 조망을 가로막는 일만은 없으면 좋겠는데......

  또 그 너머로 한 가닥 실처럼 이어진 가느다란 도로에는 쉴 새 없이 오가는 자동차들이 미니어처 세상의 작은 모습으로 변신하여 시야를 맴돌곤 한다. 멀리 길 쪽을 바라보노라면 고즈넉한 풍경이 마치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게 한다. 영화에서 소리가 없으면 장면의 전환이 훨씬 느리게 느껴지는 것은 웬 조화일까?

  거기에다 고개를 조금만 쳐들면 야트막한 야산이 가로막는다. 그 산자락에 자리잡은 크고 작은 건축물들은 마치 시루떡의 팥고물인 양 촘촘하게도 박혀 있다. 그 사이로 골프 연습장 그물망이 춤추듯 너울거리는 것은 역시 이 봄의 아지랑이 탓일 게다.

  그리고 그 뒤로 하늘과 경계를 이루는 것은, 조심스레 아기를 감싸듯 포근한 어머니의 품새를 하고 있는 모악산이다. 지리산만큼 웅장한 품은 아니지만 그 나름의 그윽한 멋을 지니고 있다고나 할까? 자연이 사람을 닮는 것인지 사람이 자연에 동화된 것인지, 모악은 전주 근동 사람들의 은근한 성정과도 흡사하여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실 창틀을 표구해 본다면 그림의 구도는 대략 이러하지 않을는지? 크게 둘로 나누어 윗 부분 절반은 하늘이 차지하고, 모악산과 그 앞산과 실같은 도로와 신시가지 예정지까지가 나머지 아랫쪽 절반이라 할 수 있겠다.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그림에서 절반도 훨씬 넘는 하늘은 통째로 하늘 하나일 뿐이다. 저렇게 크고 넓은 하늘이니 그곳은 우리네 동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리라. 속좁은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겪어야 하는 반목이나 갈등 같은 것은 발붙일 수 없는 크고 너그러운 세상일는지 모른다.

  그에 비해 그림판의 반쪽도 안되는 그 아래쪽 세상에는, 큰 산과 작은 산과 큰 건물과 작은 집과 도로와 수많은 자동차들과 또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랑 옹색하게 자리를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그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온갖 질시와 협잡이 어지럽게 그림 곳곳에 배어있음을 어찌하랴? 

  창 밖의 나른한 봄볕을 쬐다 보니 주제넘게도 잠깐 세상 걱정을 해본 것이려니........

신상채(전북경찰청 정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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