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다녀와서
북한을 다녀와서
  • 태조로
  • 승인 2004.03.09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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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 이 말같이 여러 가지 생각이 나게 하는 단어도 별로 없으리라. 막상 이 곳을 간다고 생각하니 해외여행 경험이 비교적 많은 필자로서도 기대감, 설레임과 함께 중압감이 깃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원전수거물관리센터, 공공기관 유치 등 당면현안을 뒤로 한 채, 설레임을 간직하며 비행기에 몸을 맡겼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거웠다 그런 필자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려항공은 지난 2000년 6월1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회 깊은 표정으로 트랩에 한참 서 있던 그 자리에 필자를 세워 놓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참 많은 세월이 흘렀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그동안 알게 모르게 통일의 계단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오신 분들이 노력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필자도 이 행렬에 동참하고 또 하나의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 뿌듯했다.

이번 방북목적은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데 있었다. 만성적 식량난 해결을 위해서는 긴급구호식 지원보다는 생산체계를 복구시키고 영농기술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미 많은 자료를 통해 알려진 대로 북한은 연간 100~150만톤의 식량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북한의 식량 부족상황은 몇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90년대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경제협력체가 붕괴되어 만성적인 유류부족에 시달려 왔다. 또한 60년대 설치된 중공업시설의 노후와 부품공급이 안되어 산업가동률을 저하시켰고, 이러한 것들이 농업생산에 필수적인 비료, 농약, 농기계 등 농자재 생산을 중단시켜 식량난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연료난에 따른 산림의 황폐화가 자연재해를 유발시키고 결과적으로 농업재해로 인한 피해를 가중시키게 된 것이다.

북한은 일찍이 경지정리와 농업기계화를 추진하였다.

이번에 필자가 방문했던 황해남도 신천군은 재령평야에 속해 있는 지역으로 그곳의 경지정리는 우리나라와 같은 규모로 되어 있었고 경지도 호남평야 못지 않게 넓었다. 낡았지만 트랙터도 있었다.

트랙터는 1958년부터 “천리마 28호” 형식명으로 생산 보급되었으나 현재는 설비 노후화로 정상 가동이 안되고 수리용 부품이 조달되지 않아 트랙터가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황해남도는 북한에서 유일하게 이모작이 가능한 지역이다. 여러 가지 사정상 2모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전라북도의 발전된 영농기술과 농기계 등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2모작과 함께 북한측의 농업생산성제고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금번 농업협력사업의 초점을 영농기계화를 통한 농업생산성향상에 두고, 이앙기부터 수확기까지 필요한 다양한 농기계를 지원해 주고, 기계를 수리할 수 있는 농기계 수리공장과 운영에 필요한 공구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이번 사업은 2모작에 필요한 보리파종기, 배토기, 자동탈곡기가 처음으로 북한에 지원되는데 뜻이 있다 하겠다.

또 시범농장 10㏊에 대해서는 이앙기, 육묘상자, 파종기 등을 지원하여 남한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게 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농기계와 농업기술 지원은 북측의 인력난을 해결함과 동시에 기계화작업을 통해 수확물의 손실을 줄여 단위면적당 곡물생산량을 증대시켜 줄 것이다. 나아가서는 남측농기계의 우수성과 효율성을 인식시켜 중장기적으로 남북간 농기계 협력사업의 계기를 조성하게 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이제는 지방자치단체들을 포함, 각 분야가 한민족공동체 형성에 어떤 형태 또는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해야 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협력 사업은 북한의 실정을 먼저 잘 알고 해야 실패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회성?이벤트성 행사나 교류보다는, 지역특성에 맞고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조그만 사업들을 각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신뢰를 축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 전북에서 추진하고 있는 농업협력사업은 전국에서 최초로 도와 14개 시?군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 농도인 전북도의 특성을 살려 농업기술협력 사업을 선정한 점, 대상지역도 우리도와 여건이 비슷한 황해남도를 선정하여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실 있게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4박5일간의 북한 체류는 비록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의미있는 기간이었다.

북한의 안내원은 매우 친절하였고, 북측에서는 이번에 매우 이례적으로 북한 국민의 실생활에 접할 수 있도록 현장까지 시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주었다. 특히 이번 평양방문에서 ‘휘파람 자동차’ 광고판을 보게 되었는데, 이는 자본주의적 요소가 북한에 도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앞으로 남북교류협력의 기반이 더욱더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였다.

순안공항을 향하는 길 내내 그동안 마주쳤던 얼굴들이 정겹게 떠올랐다. 최성익 단장의 “호남벌에서 오신 분들 답게 통크게 도와달라”는 걸걸한 목소리도 언뜻 스쳤다.

한발짝 한발짝 성심과 신의를 갖고 서로 다가가면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언젠간 꿈이 아닌 현실로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형규<전라북도 행정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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