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자살소식 없었으면
안타까운 자살소식 없었으면
  • 승인 2004.03.1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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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기업인이 한강에 투신하는 등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미증유의 IMF 사태 후 실직되는 등 고달픈 가장들의 자살소식이 지면을 장식해오다 한때 뜸한 듯하던 자살행위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자살한 이유의 대부분이 실직 또는 빚더미로 인한 압박감에서 빚어지고 있고 황량한 가정형편이 차지하고 있다. 이같이 생명을 쉽게 버리는 극한 상황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사회현상을 보는 마음은 안타깝고 착잡하기 그지없다. 더욱 귀중한 목숨을 생활의 어려움이나 경제적 문제와 바꾸는 생명경시 세태가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오죽했으면 극단의 선택을 했을까 하며 극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심리가 만연한다는 것도 우리가 걱정스럽다 할 것이다.

 최근 정치적 환경마저 바닥에 추락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경기침체가 지속돼 빚을 얻는 가정이 늘어나고 또 그 빚을 갚지 못해 다시 많은 가정들이 붕괴하면서 청·장년들의 죽음 선택이야말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우리에게 많을 것을 생각해주고 있다.

 우리의 목숨은 하나뿐이며 우주다. 그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지고 지순한 가치인 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 복제인간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생명은 매우 신성한 것이다. 그런데 삶을 살아가면서 돈이 없다고 하여 절망적인 생각이나 하면서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쩌면 죄악일 수 있다. 또 모멸감을 주었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했다고 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리는 극한 행위는 자신은 고통에서 벗어날지 모르나 이 세상에 남아 살아가는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또 하나의 고통을 주고 가는 것이다.

 아무튼 가장 신성한 것은 누가 뭐래도 생명이다. 신이 생명과 함께 인생을 살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부여했다. 그리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의지력도 주었다 이걸 생각하면 결코 생명을 가볍게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자살함으로써 절망과 고통을 일거에 해결할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한다. 물론 이렇게까지 되어가는 사회현상에 대해 우리 모두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좀더 절망과 고통으로 살아가는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려하는 나눔의 정이 우러나는 사회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생명을 버리는 극한상황은 결코 남의 일 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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