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년 삼월 열사흘
갑신년 삼월 열사흘
  • 승인 2004.03.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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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과 또 충격이라고 한다. 나라는 없고 집단의 이익만 있고 다른 목소리는 없다. 옛 사람들은 “ 넓게 배우고 들은 것이 많아서” 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은 ‘좁게 배우고 남의 말을 듣지 안듣는’ 그러한 시대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대로 각각 자기 당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그 하찮은 기 싸움을 벌리고 있고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없을까?

 탈고를 끝내고 출판사에 넘겨 유월 초에 발간 될 <택리지> 복거총론 2권에 쓰여 진 내용과 오늘의 우리나라 상황은 너무도 흡사하다.

 “근래에 와서는 4색이 모두 조정에 나아가 오직 벼슬만 할 뿐, 옛날부터 내려오는 의리는 모두 고깔 씌우듯 숨겨버렸다. 사문의 옳고 그름, 또는 충신과 역모에 대한 논의도 모두 지나간 일로 돌려버린다. 지금은 사납게 피를 흘리며 싸우던 버릇은 비록 전에 비하여 적어졌으나, 옛 습속에 더하여 나약해지고, 줏대 없고, 매끄러운 새로운 병을 추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음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입으로 말할 때에는 모두가 한 마음이 된 것처럼 꾸미고 있다. 공식 석상과 대중이 모인 곳에서 조정의 일을 이야기하게 되면 서로 자기주장을 비치지 않으면서, 대답이 곤란하면 쓴웃음으로 임시변통하여 그 자리를 넘기고 흐려버린다” 고 하였는데 오늘날 지식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와 비슷하다.

  옳은 얘기를 하면 ‘입 바른 소리를 잘 한다’ 라거나 삐딱하다는 말로 몰아세우거나 하고 행여 그 자신이 난처한 경우를 당하게 될 사안이 있으면 입을 다물고 눈치만 살핀다. 황동규 시인의 시에 “우리는 뚫어 놓은 길만 다니는 자들이다 소리칠 것인가” 라고 하였는데 그 시절이 250년이 더 지났는데 흡사 2003년 오늘의 정치판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대다수의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앞장을 서고 아무도 모르게 내 가족 내 집단만 챙기는 사람들이 날이면 날마다 늘어나고 있다.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리저리 당을 옮겨 다니는 ‘정치철새’라는 신조어의 등장으로 오랫동안 그 권력을 유지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생겨난 점이다.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물고기를 찌는 것과 같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국가를 다스릴 때 자주 뒤집다보면 작은 물고기는 곧 부스러져서 뼈만 남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국가적 이익이나 공공의 이익은 사라진지 오래가 되었다.

 이중환은 “그런 까닭에 의관을 한 사람들이 모여들면 오직 들리는 것은 만당의 웃음소리뿐이고, 명령의 실시에 있어서는 오직 자기 이익만을 도모하며, 실제로 나라를 근심하고 공을 받드는 사람이 드물다”고 말했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천지간 여러 나라 가운데, 이처럼 인심이 헐고 무너져서 그 본성을 잃어버린 지금 같은 세상은 없었다.

 이중환이 질타했던 그 당시 보다 오늘의 현실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관청을 주막집 같이 여긴다”고 하였고 오죽했으면 “인심이 좋은 곳을 찾아 헤매기보다. 차라리 사대부들이 살지 않은 곳을 택하여 사는 것이 낫다”고 하였을까?

 정부의 돈을 마치 제 돈처럼 가져다 쓰지를 않나, 공과 사를 구별하지 않은 채 기네스북에 오를 일을 행하고도 “나 또는 우리만 그러냐” “재수가 없어 나만 걸렸다” “내가 입을 열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떠벌릴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어느 곳을 막론하고 부풀대로 부풀어 터지기 직전이다. 역사 이래로 누적되고 농축된 온갖 잘못된 관행을 다 써먹는 듯한 정치인들과 시정잡배들을 성토하는 민중들의 목소리가 드세게 일어나고 있다.

 “정치는 우리네 범죄 집단 중에서 좀더 저급한 족속들이 즐기는 생계의 수단, 또는 사리를 위해 공리를 운영하는 것이다. 또 정치인은 ‘조직사회가 건물을 세운 토대가 되는 진흙 밭에 사는 뱀장어‘ 라고 정의 하고 싶다.”

 19세기 말 미국의 저널리스트 암브로스 비어스가 < 악마의 사전훈>에 기록한 말이 이 시대 한국에서 유효한 것은 얼마나 비극적이며 희극적인가?

신정일<황토현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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