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는 진리가 없다
수학에는 진리가 없다
  • 전북대 수리통계과학부 교수
  • 승인 2004.03.2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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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리를 참, 진실, 참된 이치의 의미를 갖는 단어로 사용한다. 철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실재적인 관계, 또는 사태를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는 판단 내용이 가지는 객관적 타당성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이 긍정 또는 부정으로 나타날 때에만 진리와 거짓을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진리란 실재하는 것의 긍정이며 실재하지 않는 것의 부정인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수학이야말로 진리이고, 수학에서는 모든 것이 명백하다는 선입견에 빠져 있었다. 또 수학에서는 2개의 정답이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명제나 계산은 참이 아니면 거짓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수학자들이 이끌어 낸 결론 중에 하나는 수학에는 진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수학은 진리의 체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여러 민족들이 여러 가지 언어를 가지고 있듯이 수학도 여러 가지가 존재할 수 있을 뿐이며 각 분야의 수학이 고유한 자신의 논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올해의 야구선수 타격왕인 황 금팔 선수가 어제와 오늘 두 시합에 출정하여 어제 게임에서는 3타수 2안타를 쳤고, 오늘은 4타수 3안타를 쳤다고 하자. 이때 황 금팔 선수의 두 게임에서의 평균 타율은 얼마인가? 이 계산은 두 가지 풀이법으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는 두 타율을 분수의 합으로 더해보면 2/3 +3/4 = 17/12인데 이 계산은 터무니없다. 12타석에서 17개의 안타가 나올 수 없다. 평균타율이므로 위 계산 결과를 2로 나누면 24/17이 된다. 그러나 이 계산도 옳은 답이 아니다. 실제로 옳은 풀이는 어제와 오늘 일곱번 타석에 들어섰고 두 게임의 안타 수는 5개이므로 (2+3)/(3+4)=5/7와 같다. 이 문제에서 옳은 답을 얻기 위해서는 분모는 분모끼리, 분자는 분자끼리 더하는 새로운 분수식의 계산을 해야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계산법과는 다른 새로운 연산법을 적용함으로써 아주 유용한 새로운 수학을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연산 법칙에서는 기존의 분수의 성질들은 거짓이 되고 새로운 진리 체계가 나타날 수 있다. 그렇지만 상식이 제멋대로 새로운 수학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두 타율을 더하는 분수 계산은 어떤 현상에 적합한 연산을 정의함으로써 물리적, 현실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이러한 의미있는 수학은 살아남고 발전하지만 그렇지 않는 수학은 금방 사라지고 만다. 어떤 수학적인 이론이 생명력이 있는가는 단지 경험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수학자 르벡크(Henri Lebesgue, 1875-1941)가 비유한 것처럼 한 우리에 사자와 토끼를 넣으면 얼마 후에는 사자 한 마리만 남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소와 산소의 결합으로 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이 때, 수소 2 부피와 산소 1 부피를 더하면 우리가 얻는 물의 부피가 3이 되는 것이 아니다. 화학 결합의 결과로 우리가 얻는 물의 부피는 2 이다. 마찬가지로 1부피의 질소와 3 부피의 수소를 더하면 2 부피의 암모니아가 발생한다. 이런 사실로부터 우리가 사용하는 덧셈은 물리 현상 중 극히 일 부분에서만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수학이란 절대 불변의 진리체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학이란 각 분야에서 수학 자신의 논리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며, 수학이 진리이기보다는 오히려 약속에서 출발한 체계이다. 예를 들면 평행선 공준에서 출발한 유클리드 기하학 이나 평행선의 공준을 부정한 데서 출발한 비 유크리드 기하학이나 각각이 자신의 체계 안에서 모순이 없는 체계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분야의 수학이 존재할 수 있는데, 그 각 분야의 수학은 자신의 논리를 갖고 그 안에서는 모순이 없는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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