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협공(挾攻)을 이겨내려면
역사 협공(挾攻)을 이겨내려면
  • 최규장<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04.03.23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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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는 피켓 들일도 많다.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꿍꿍이속이 드러나자 분노의 피켓이 올랐다. 연구재단이 생기고 고구려 책이 쏟아진다. 하지만 중국이 덩치 값도 못한다고 탓해보았자 조상들이 말달리며 호령하던 대륙은 이미 우리 땅이 아니다.

먼 역사의 기억 속에서만이 아니다. 북한체제가 무너지면 자기네들이 떠맡아야된다고 나올지도 모른다. 6.25때 한반도가 위태롭게 되자 수 십만 명의 의용군을 보내 막아주던 저들이 아닌가. 고구려 벽화도 자기 것, 장백산도 양보 못한다고 우기면 어쩔 것인가.

눈을 돌려 남쪽을 보자. 일본의 야마토(大和)의 허깨비가 어른거린다. 한 점 바위섬 독도가 문제인가. 최근 저팬소사이어티(Japan Society)가 미국 교육자용으로 만든 웹싸이트에는 한수 이남을 일본이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任那)망령이 버젓이 되살아나 있다.

북에서 밀리고 남에서 치받는 역사협공에 샌드위치가 된다면 태극기 휘날리며 한민족이 비빌 언덕은 고작 한강과 대동강사이로 졸아들 판인가.

고구려만 문제인가

우리는 역사에 너무 무심했다. 죽은 듯 해도 살아 숨쉬는 것이 역사인데 이웃을 상대로 돈벌이에만 바빴다. 고구려 연구로 박사 딴 사람이 온 나라에 15명도 안 된다니 말이 되는가.영국은 인도를 내주어도 쉑스피어와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1300년 전에 실크로드를 밟고 쓴 '왕오천축국전'이 신라 중 혜초의 일기장임을 일러준 것이 외국인이었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중국의 고구려 '공정'은 역사를 잊고 사는 민족을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하지만 고구려보다 더 한 것을 챙겨 나서야한다. 우리가 고구려를 아끼는 것은 넓은 땅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강성한 문화의 뿌리에 있다.

한국문화의 뿌리는 바깥세계에 너무도 까맣다. 미 국민이면 누구나 읽는 사회과 교과서를 펴 보자. 한국역사는 중국문화이동의 파편 조각이며 일본의 속국처럼 그려져 있다. 유교문화, 과거시험, 한자 사용 등을 소개하고있지만 유교화 이전의 한국은 언급조차 없다.

같은 교과서 속의 일본편은 어떤가. 고대사부터 반듯하다. 백제가 그들의 스승이기는커녕 되레 일본 왕에게 조공을 바쳤고 성덕태자 때부터 중국식 율령제도를 도입하는 등 중국과 직교류를 터 독자적인 문화를 일구어 나갔다는 식이다.

 우리의 정체성이 이토록 뭉개졌는데 식민사관의 잔재라고 개탄할 뿐이다. 광복한지 몇 해인데 아직도 식민사관 탓인가. 최근 고고학, 체질인류학, 언어학의 학문적성과는 식민사관의 오류를 지적하고있지만 문제는 첫째, 영어로 되어있지 않고, 둘째, 극히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 오가는 지식일 뿐이라는 점이다.

역사관을 전파하는데 교과서보다 나은 수단은 없다. 일본 우익들이 '새 역사 교과서 만드는 모임을 앞세워 역사왜곡을 주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 교과서는 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시장의 산물이다. 한국 역사의 축소와 왜곡을 중국과 일본이 고쳐주기만 턱 빠지게 기다릴게 아니라 먹혀드는 주장을 가지고 영어권 교과서 시장에 파고 들일이다.

미국 교과서부터 확 뜯어 고쳐야한다. 그러자면 교안집을 내야하고 교안집이 나오려면 교사를 훈련시켜야한다. 역사 변장술에 능한 일본이 수 십 년 동안 국책 삼아 해온 일이다.

미국은 세계사의 맥락에서 역사를 가르친다. 국사에 매달리지 않고 인류사를 배우며 오늘에 연계하여 역사를 이해하려든다. 여기에 한국이 파고들 틈새가 보인다. 해외파병, 6자회담, WTO를 모르고는 하루도 전진할 수 없는 우리가 아닌가.

강대국 틈에 낀 문화 창조자며 중계자로서 중국으로, 인도로, 서역으로 교섭해나갔던 개척정신과 이를 입증 할 문화유산이 보배다. 고구려는 사라졌지만 중국을 넘어 멀리 서역에 도달한 고구려정신을 벽화가 말해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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