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26>아직 퇴근할 때는 분명 아닌데
평설 금병매 <26>아직 퇴근할 때는 분명 아닌데
  • <최정주 글>
  • 승인 2004.03.30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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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금련의 봄 <26>

술기분에 형수를 건드려놓고 무참하여 꿈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반금련은 믿었다. 모든 일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운 법이었다. 저녁부터는 무대 놈을 일찍 재워놓고 늦은 밤에 살며시 찾아가면 아무 소리 않고 안아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호호, 내가 이날 이때껏 남한테 좋은 일이라고는 한 적이 없는데, 웬 복이 이리 많지?’

반금련이 호호 웃을 때였다. 또 나무계단을 올라오는 삐그덕 소리가 들렸다. 제법 쿵쿵거리는 폼이 무대는 아니었다. 왕노파인가 했으나, 발소리가 노파의 것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컸다.

‘도련님인가? 아직 퇴근할 때는 분명 아닌데.’

반금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어나 앉는데, 거실 문이 열리며 꼭 산도적같이 험상궂게 생긴 사내 하나가 계십니까? 하고 물었다.

반금련이 침실에서 나와 물었다.

“누구세요?”

“예, 저는 순포도청에 근무하는 병정 오가인데, 무송대장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시킬 일이 있으면 시키세요.”

“아, 그래요. 안 보내도 된다고 했는데, 고맙기도 해라.”

거실로 나온 반금련이 오병정을 위에서 아래로 죽 훑어 보았다. 턱밑에 수염이 덥수룩하고, 얼굴에서 땟국물이 흘렀으나, 무송에게 뒤지지 않을 큰 키며 떡벌어진 어깨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무슨 일부터 할까요? 장작을 팰까요, 아니면 물부터 길을까요?”

“좋아요. 기왕 오셨으니, 물부터 길어오세요. 며칠간 목욕을 못했더니, 몸이 찌부듯하네요. 물을 길어다 두 통만 데워주세요. 물통은 저기 목간에 있어요.”

반금련이 목간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예, 알겠습니다.”

오병정이 바로 돌아섰다.

“헌데, 성이 오가라고 했나요? 이름은 무엇이죠?”

반금련이 묻자 오병정이 고개를 돌리고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산이라고 합니다.”

“산이요?”

“예, 제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함께 산을 넘다가 저를 낳았다고 해서 산이라고 지었답니다.”

“그래요? 산을 넘다가 낳았다구요? 산적이 안 되고 병정이 되기 참 다행이네요.”

반금련이 호호 웃는데, 오병정이 물통을 지고 일층으로 내려가고, 이내 왕노파가 얼굴을 디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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