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토양이 무너진다
문화예술의 토양이 무너진다
  • 황병근
  • 승인 2004.04.0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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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불교의 왕국이요 고구려가 군사대국이라면 백제는 문화예술의 꽃을 활짝 피운 나라라 하겠다. 이러한 훌륭한 백제문화를 계승해온 우리고장은 농경문화권을 주도해오면서 어느 고장 못지않게 가장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문화예술의 기름진 토양을 살찌워왔다. 우리전북을 상징하는 국악과 서화예술등이 이러한 두터운 토양에서 가꾸어오면서 예향으로서 명예를 지켜왔지만 타지역의 거센 도전을 받아온지 오래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동서간의 정치적인 갈등구조에서 밀린 우리 호남은 경제적 낙후를 면치 못하면서 수천년 애써 길러온 문화예술의 비옥한 토양이 무너지기 시작하여 이제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전북을 지켜온 예향의 명예가 추락위기에 놓여있다.

 21c 무한경쟁시대에서 존립하기 위해서는 독자성이 있는 문화산업만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장 강력한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바이다. 과학과 기계산업이 생산하는 물질상품은 세계각국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것이어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록 기계산업화에 밀려 뒤져있지만 수천년 지켜온 문화예술의 전통적 기반을 총동원해서 문화산업을 향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면 그동안의 낙후를 극복하고 문화의 새시대를 이끌어갈 효자산업이 될것임은 명확한 일이다. 문화산업으로 가는 길은 문화예술인만의 몫이 아니라 문화예술 활동의 원동력이 될 기업메세나운동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노블레스 오블리지가 뒷받침될 때 21c 문화경쟁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문화산업의 중심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메세나(mecenat)의 어원을 굳이 따져본다면 동로마제국의 초대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의 심복이자 기사(騎士)의 신분을 고수했다고 하는 정치가 마에케나스(maecenas)가 라틴문학의 황금시대를 연 벨레길리우스등 문학가 및 시인들의 열열한 후원자 역할을 한데서 유래하여 예술 문화 과학에 대한 두터운 보호와 지원이란 의미의 불란서 말이다. 로마시대 이후 가장 획기적인 메세나 운동이 일어났던 것은 14c~ 16c에 이태리를 비롯한 전 유럽에서 벌어졌던 문예부흥운동의 르네상스(Renaissence)시기다.

 14c 중엽에 내습한 패스트로 인한 인구격감, 흉작 및 계층간의 대립 등 전 유럽을 뒤덮은 전면적인 위기에서 회복을 위해 일어섰던 귀족들은 학자와 예술가들의 작품과 출판물들을 매입하며 문화예술의 부흥에 앞장섰던 것이다. 그런 사회적 상황을 기반으로 정신적인 생산력을 높이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세계적인 불멸의 예술가인 G보카치오와 레오나르도다빈치등이 배출되었으며 다음 세대로 미켈란젤로와 S라파엘로등의 거장들이 뒤를 이어서 그들의 명작들이 6백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세계 최고 고부가가치의 문화상품으로 손꼽히는 관광수입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훌륭한 문화산업이 조성된 그 원동력을 찾아본다면 메세나운동을 펼친 귀족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지의 발양에서 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로마가 선진문화를 이룩한 그 근저에도 메세나운동을 할 수 있는 귀족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시혜(施惠)정신이 살아있었고 전술한 바와 같이 르네상스가 3백여년동안 전 유럽을 통해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김으로써 당사국들의 문화적 수혜는 물론. 문화산업의 선진국 대열에서 여유있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도 메세나 정신이 살아있는 귀족들이 국가를 위해서 각기 자기신분상의 도덕적 의무를 이행한데서 비롯된 결과라 하겠다. 미개시대라고 할 수 있는 2천여년전에도 마에케나스와 같은 문화예술을 사랑하며 헌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독지가가 있었고 6백여년전 르네상스를 일으키기 위해 문화예술작품들을 헌신적으로 매입하여 문화예술인들의 예술활동을 지원했던 귀족들이 있었다. 그러나 2천여년을 더 많이 살아온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시(是)와 비(非)를 가늠하지 못하는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윤리도덕이 파괴되고 부정비리와 탐욕에 눈이 어두운 귀족들이 득실거리며 뭉칫돈과 차떼기 거래로 온통 나라를 수렁 속에 빠뜨리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 고장의 자존심으로 수천년 애써 가꾸어온 예향의 토양이 무너지고 있다. 페스트의 내습과 계층간의 갈등 등 유럽의 전면적인 위기에서도 유럽의 노블레스는 참담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국가와 인류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으로 파국에서 회생시키는 희생적 책무를 다했다. 경제논리에 밀려 항상 뒷전에서 서성대야하는 전북문화예술은 고사(枯死) 직전에서 소나기를 기다리는 고목처럼 기업메세나의 손길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낙후 전북의 뒤안에서 영양실조된 전북예술은 고대 로마의 마에케나스와 같은 열열한 후원과 르네상스를 이끌어낸 유럽의 귀족들과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지의 뜨거운 열정이 살아날 때 예향전북은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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