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된 국민의 힘 발휘하자
주인된 국민의 힘 발휘하자
  • 태조로
  • 승인 2004.04.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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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많은 국민들은 선거가 빨리 끝났으면, 끝나서 좀 조용히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을 법하다. 좁은 나라에서 2년 걸러 한 번 씩 선거를 치르면서 마치 홍역을 앓듯, 그 열기와 신경쓰이게 하는 것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시킨다. 게다가 이번 선거는 사상 유례없이 벌어진 탄핵사건과 맞물리면서 국민들이 정치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다음 국회의 대국민 약속인 정책과 공약은 자취를 감추고, 후보 개개인에 대한 인물평가도 사라져버렸다. 시민단체에서는 열심히 당선운동대상자, 낙선운동대상자 명단을 발표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16대에서만큼 신선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발표단체들이 많아지면서 그 선정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난 까닭이다.

선거 초기에는 오로지 탄핵에 대한 찬반론만이 난무했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가 탄핵의 폭풍속에 묻혀버리는 듯 했다. 그러더니 노인폄하발언이 나오면서 이에 대한 비판과 사죄가 선거의 또 한 흐름을 장식해버렸다.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당사를 창고와 광장의 천막으로 옮겨서 국민의 심판에 겸허하고자 하는 모습을 연출해내고 있다. 아무리 정치에서 상징조작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요즘은 비디오의 시대라지만 이번 선거는 완전히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나마 이번 선거에서는 과거 선거의 폐해들이 많이 개선되었다. 선거판에 늘 불가사리처럼 들러붙었던 선거 브로커들, 식당마다 넘쳐나던 향응 접대객들, 관광버스 타고 구경가던 상춘객들, 은밀히 뿌려지던 돈봉투, 이런 것들이 과태료 50배라는 철퇴에 어느 정도 나가떨어져 버렸다. 그 와중에서도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 가능성이 있는 후보가 50명이 넘는다고는 하지만 예년 선거에 비해서 ‘돈’의 그림자가 희박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또한 마치 시간을 박제해놓은 것처럼 반 세기가 넘도록 변하지 않던 초등학교 운동장의 합동연설회가 사라지고 방송토론회로 대체되었다. 후보들은, 청중들의 반응에 아랑곳없이 운동장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던 구시대와 작별하고, 패널들의 송곳같은 질문들을 어떻게 받아넘겨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이제 앞으로는 지역의 문제와 국정현안에 대해 지식과 소신, 주관을 갖지 않고서는 국회의원 도전장을 내밀기 어려운 시대가 되리라는 짐작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굳이 뙤약볕에 쭈그리고 앉아 고행을 하지 않고도 집에서 편안히 후보의 구석구석을 평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방송국마다 토론회를 개최해주니 관심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TV토론과 신문 같은 대중매체뿐만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후보들마다 세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으므로 자기 지역의 후보에 대해 잘 모른다고 불평하는 것은 그만큼 본인의 게으름과 무관심을 입증하는 것일 뿐이다.

금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나흘간의 황금연휴를 맞게 되어서 이미 목요일의 동남아와 제주도 항공권은 매진되었다고 한다. 삶의 질도 중요하고 휴가도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선거일이 왜 휴일인가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선거법 협상과정에서부터 국회는 너무나 지루하게 국민들을 기다리도록 만들었다. 이해관계에 얽혀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안위는 그 다음이다. 그러나 한 나라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과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그토록 비판하고 심지어 환멸을 느끼기조차 하는 오늘날의 한국정치는 누가 만들었는가. 결국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주권을 포기하고서는 17대 국회에서 또 다시 탄핵과 같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국회의원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루소는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국민들은 선거가 실시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고 설파한 바 있다. 주인이 될 것인가, 노예로만 머물러 있을 것인가, 두 갈래의 선택은 스스로에게 남겨져 있다.

전정희<전북여성정치발전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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