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치 천국
파라치 천국
  • 승인 2004.04.1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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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정 선거법에 따라 4·15 총선에서는 포상금 지급 액수와 범위가 대폭 확대되어 선거법 위반 사례가 확인될 경우 선거사범 신고자에게 법정 최고액인 5,000만원 범위 내에서 불법 비용의 50배에 달하는 막대한 포상금이 지급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선거 풍토가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불법 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눈초리가 매서워지고 신고 포상금을 노린 “선파라치(선거 파파라치)”가 등장하면서 예전의 선거 분위기가 자취를 감추었다. 이렇듯 선거 풍토가 확 바뀌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신고 포상제도는 다른 분야에서도 이미 그 효과가 입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진정한 신고가 아닌 포상금 타 먹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본래의 파파라치(Paparazzi)는 유럽에서 유명인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근접해서 쫓아다니며 특종 사진을 노리는 직업적인 질 나쁜 사진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오늘 날 변종하여 포상금을 노린 각종 파파라치로 변해버린 것이다. 2001년에는 “카(車)파라치”가 등장하여 사고 예방보다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버려 여론을 만들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카파라치 양성 학원이 등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병·의원과 약국의 불법 행위를 감시하는 “팜(醫)파라치”, 농지 불법 전용사례를 신고하는 “농(農)파라치” 쓰레기 불법투기를 전문적으로 감시하는 “쓰파라치”, 주가조작이나 내부자 거래 등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는 “주(株)파라치”, 노래방 불법영업을 고발하는 “노파라치”,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하는 업소를 신고하는 “술(酒)파라치”, 불법 학원 강습이나 고액 과외를 신고하는 “과파라치”, 크레디트 카드의 불법 가맹점을 신고하는 “크파라치”, 그 외에도 조세 포탈 등을 신고하거나 가짜 양주 제조업자 또는 이를 판매하는 유흥업소를 신고하거나 식품 접객업소에서 1회용 합성수지 용기를 사용하는 것을 신고하거나 심지어는 교육감 선거 및 학교 운영위원 선출시에도 ‘선출부정신고’ 제도를 도입하여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서울 경찰청 지하철 수사대에서는 지하철의 성추행 범을 신고해 달라고 캠페인을 벌리고 있다.

 이처럼 모든 부문에서 포상금 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나라는 신고 포상금 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는 파라치의 천국이다. 이 파라치들은 누구인가? 포상금의 종류가 많아지고 포상 액수가 커지면서 돈에 눈이 먼 직업 신고꾼일 뿐이다. 이런 신고 문화가 언제부터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이런 포상금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아마도 몇 십년 전부터 일 것이다. 골목길 벽이나 전봇대에 ‘간첩신고 1,000만원, 간첩선은 5,000만원’이라는 현상 표어가 나붙기 시작하면서 부터 아닐까 한다.

 이 때부터 우리는 포상금에 정신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교육현장에서는 어린이들에게 화단에서 꽃을 꺾은 친구를 신고하라고 가르치고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일러바치도록 하며 욕설을 하는 아이들을 고자질하도록 교육하거나 유도하면서부터 사단이 난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남을 감시하고 고자질하는 그 버릇들이 결국은 성인이 되어서도 신고정신으로 무장(?)이 되어서 철저한 신고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신고 뒤에 오는 포상금에 눈이 멀어가기도 한다. 물론 자발적인 신고나 고발은 부정을 감시하여 부정부패를 줄일 수 있고 각종 정부 정책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배금주의의 만연과 시민들 사이의 위화감 조성 등의 부작용도 없지 않다. 우리들은 정말 스스로 규칙과 법을 지킬 수는 없는 것인가. 언제쯤 진정한 민주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민주시민으로 가는 길이 멀고 요원하기만 한 것인지. 우리들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걸리면 돈벼락이라는 파라치들이나 잡히면 끝장이라는 위법자들의 술래잡기는 언제쯤 끝날 것인가. 과연 근본적인 대책이나 개선방안을 아는 사람 어디 없소 큰 소리쳐 불러본다.

정성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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