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38>이런 기분 첨이예요
평설 금병매 <38>이런 기분 첨이예요
  • <최정주 글>
  • 승인 2004.04.14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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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금련의 봄 <38>

“ 또 쌌어요, 아씨.”

사내가 중얼거렸으나, 그 말이 계집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서 노란 나비같은 것이 너울너울 날아다닐 뿐, 왕노파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사내가 부시럭거리며 옷을 입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반금련이 정신을 차린 것은 오병정이 옷을 다 입고 침상에 오두마니 앉아 한참을 기다린 다음이었다.

“고마워요. 이런 기분 첨이예요.”

반금련이 방긋 웃는데, 색시, 색시, 하고 부르는 왕노파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으이구, 저 웬수. 당신은 가만히 있어요. 절대로 침실 밖으로 나오면 안 돼요. 숨소리도 크게 내지 말아요. 알았지요?”

“예, 아씨. 작은 소리로 숨을 쉬면 되지요?”

오병정이 눈을 크게 떴다가 꿈벅거리며 말했다.

“인기척을 내서는 안 돼요.”

다시 한번 단단히 당부한 반금련이 옷을 걸치고 머리를 추스르며 거실로 나와 출입문을 열었다. 왕노파가 반금련의 몸부터 살폈다.

“어쩐 일이세요? 할머님이 제 집에 자주 오시네요?”

“색시한테 물어 볼 말이 있어서. 헌데 아까 왔던 병정은 갔는가?”

왕노파의 눈길이 거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간지가 언젠데요? 오늘은 딱히 할 일도 없고해서 물만 서너통 길어다 놓고 가라고 했어요. 저한테 물어볼 말이 무언데요?”

“낼이라도 내가 서문경 나리를 만나려고 하는데 말씀야, 만약 서문경 나리가 색시를 하루라도 빨리 보고싶다면 어쩌지?”

“어쩌긴 멀 어째요? 보면 되지요.”

“무송인 어떡허구? 무대야 사람이 어리버리하니까 상관 없지만, 무송은 호랑이를 때려잡은 장사라구. 만약 그 일이 무송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두 사람을 때려죽인다구, 난리를 부릴 걸.”

“생각해보니, 그도 그렇네요? 도련님한테는 부정한 여자로 보이기 싫은데.”

“없었던 일로할까? 사실은 서문나리가 색시를 어찌 생각하는가도 모르고. 우리 쪽에서만 가만히 있으면 서문나리가 색시를 어쩌겠어?”

“그렇게 하시던지요. 저도 사람들의 입살에 오르는 것은 싫으네요. 형제간의 정이 어찌나 깊은지, 제가 딴 사내를 만나는 걸 도련님이 알면 가만히 안 있을거예요.”

“어쩌면 중매를 선 나까지 때려죽이겠다고 나올지도 모르지. 그건 나도 싫구만. 없었던 일로 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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