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日 유명작가 사기사와씨 자살
한국계 日 유명작가 사기사와씨 자살
  • 승인 2004.04.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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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 남.여. 그런 속박이 싫어요. 그런속박의 안에서 안주하는 것도 싫고요" 이양지, 유미리씨 등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계 여성작가로 꼽히는 사기사와 메구무(鷺澤萌.35)씨가 지난 12일 도쿄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밝혀졌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메구로(目黑) 소재 사기사와씨의 아파트를 방문한 친구가 화장실 안에서 목을 매 숨져있는 그녀를 발견, 신고했다. 경찰은 사기사와씨가 자살한 것으로 보고 동기를 수사 중이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사기사와씨의 신간 「웰컴.홈」을 출간한 신초사(新潮社)의 편집담당자인스기하라 노부유키(杉原信行)씨는 "짐작이 갈 만한 문제는 아무 것도 없었다"며 "순간적인 감정의 혼란으로 자살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기사와씨는 오는 6월15일 도쿄의 한 공연장에서 자신의 원작을 스스로 각색,감독한 무대극 '웰컴.홈!'을 공연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져 일본 문단은 그녀의죽음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기사와씨는 최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해왔던 일기를 지난 9일 접었다. "최근 감기에 걸려 몸이 좋지않다"고만 이유를 밝혔다.

일본 경시청 히몬야(碑文谷)서 관계자는 그녀의 사망 이유에 대한 연합뉴스의취재에 "사생활에 관련된 문제라 일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한국인인 사기사와씨는 지난 1987년 여고 2학년인 18세에 문학계 신인상(작품 '강변길') 최연소 수상자로 화제를 뿌리며 등단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1989), '달리는 소년'(1990), '진짜 여름'(1992) 등을 잇따라 냈다.

부친의 삶을 형상화한 '달리는 소년'과 재일동포의 삶을 소재로 한 '진짜 여름'으로 일본 최고권위의 신인 등용문인 아쿠타가와(芥川) 상 후보에 오르는 등 세차례아쿠타가와 상 수상자 물망에 올라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사기사와씨는 흔히 한국계인 유미리씨와 비교되지만 '가족 담론'에 집요했던 유씨와는 달리 재일동포의 정체성 문제에 오랫동안 매달렸다.

대표적인 작품집은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 여기에 수록된 '진짜 여름'은 재일동포인 주인공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일본인 애인에게 들통날까봐 조바심치는 줄거리를 담고 있으며 표제작인 '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는 한국을찾은 재일동포 2세인 여성의 심적 방황을 형상화했다.

사기사와씨가 숨지기 열흘쯤 전인 지난달 31일 그녀를 인터뷰했던 홋카이도(北海道) 신문의 무라카미 무쓰미(村上睦美) 기자는 사기사와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인터뷰 당시에는 그녀에게서 별다른 이상한 감을 느끼지 못했다"며 "그녀의 작품은 매우 훌륭하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에서 사기사와씨는 일체의 '속박'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일본에서는 지금 획일적인 것을 아름답다고 여기고 울퉁불퉁함은 허락되지 않는 '보통교'(普通敎)의 교의가 만연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런 교의에 반항하고 싶은 기분이 항상 있다"고 말했다.

근작 「웰컴.홈」은 2명의 남성이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과 계모와아이가 우여곡절 끝에 화해에 이르는 줄거리의 작품 등 2편을 담고 있다. 사기사와씨는 집필 배경에 대해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고 속으로는 곯은 가족이 아닌 형태는비록 일그러졌어도 꿋꿋한 가족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기사와씨는 20대가 돼서야 자신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 뒤로 십 수년에 걸쳐 한글을 배우고 한국을 찾았다. 그러면서 재일동포라는 정체성을 자문자답했다고 한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그런 십수년간은 자기 재구축의 시간이었다"며 "이것이 내재산이 됐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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