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표를 행사하며
한 표를 행사하며
  • 태조로
  • 승인 2004.04.1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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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세이신 아버지께서 노구를 이끌고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오셨다. 현관문을 열어드리면서 투표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르지 않느냐는 나의 말에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안 일어났느냐며 “이제, 언제 투표를 또 할 수 있겠느냐”고 한 마디 하신다. 시계를 보니 6시30분이다.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 아버지를 모시고 인근 중학교에 마련된 투표장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투표장 입구는 많은 차들로 꽉 차있어 겨우 한 쪽 구석에 주차를 시켰다. 차문을 열고 아내와 나는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내려 모셨다. 한 젊은이가 다가 와 “할아버지, 어서 오세요” 라고 인사말과 함께 아버지를 부축하는 것이었다. 낯설음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순간, 자신을 투표 도우미라고 소개하였다. 전에 없었던 생소한 일이었다. 이 때, 봉고차 한 대가 들어오더니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휠체어를 내린다. 그리고는 할머니 한 분을 차에서 안아 내리더니 휠체어에 앉히신다. 그런데, 휠체어를 밀고 들어가는 광경이 아무래도 가족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아버지를 부축하고 가는 도우미에게 저 사람들은 누구냐고 물었다. 도우미 말에 의하면 “투표활동보조인”이라고 한다. 투표활동보조인은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차를 이용해 모셔오고 모셔다 드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이제 우리 나라도 장애인과 노약자를 배려하는 선진국으로 가는 것 같았다. 앞서 가는 휠체어를 보면서 저런 불편한 몸으로도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하여 투표장에 나오시는 분도 계시는데 하물며 건강한 몸을 가지고도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를 기권하여 민주시민이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였다. 이번 17대 선거는 금품살포나 흑색비방 등의 불법타락 선거에서 훌쩍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는 아직도 깨끗한 선거가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역대 어느 선거보다는 공명한 선거였다. 이는 불법선거신고 포상제 실시와 아울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으리라. 뿐만 아니라 도우미 제도나 투표활동보조인제 등을 실시함으로서 유권자들이 편리하게 투표할 수가 있었고 특히 장애인들이나 노약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신속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점이 진일보한 투표문화를 정착시킨 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제 투표가 끝나고 당락이 결정되어 후보자들의 희비가 엇갈리었다. 바라건대 낙선자는 당선자를 속마음으로부터 축하해 주고 당선자는 낙선자를 진심으로 위로해 줌으로서 지역주민들 모두 화합하고 단결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당선자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이미지를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또한 선거기간 동안에 유세차 앞,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한 표를 부탁하던 순간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시장 골목이나 양노당을 누비면서 생면부지의 부녀자나 촌노 등에게 악수를 청하고 포옹을 하면서 굽실거리면서 한 공약들을 오래오래 기억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선량들은 당선만 됐다하면 그 순간부터 지역주민이나 유권자들을 우습게 본 것도 사실이다. 또한 우리들도 그런 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 들였다. 그러나, 당선자는 초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한 번은 속아도 두 번은 속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 등원을 해서도 합리적인 정책 대결과 민생 챙기기에 온 힘을 기울이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툭하면 치고 패고 욕설이나 퍼붓는 시중잡배들이나 하는 행동은 제발 말아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 손발이 다 닳도록 일하겠다고 하늘을 두고 맹세를 한 우리의 대표가 신발 짝이나 던지고 옷이 찧기고 코피가 터지는 장면들이 화면에 비치는 것을 보는 지역주민들의 마음은 어떨가를 생각한다면 진정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 것이다. 지난 청문회에서 낯을 붉히면서 욕설을 하고 목에 힘을 주면서 거드름을 피우던 선량들이나 국회에서 깽판을 치고 뇌물을 커피 마시듯이 먹어대던 선량들의 말로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수의를 입고 오랏줄에 줄줄이 묶여 고개를 쳐 박은 모습에서 인생 무상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당선자들은 알아야한다. 잘 나갈 때일수록 정신차리고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 이제 게임은 끝났다. 국민들은 생업으로 돌아가고 당선자들은 깨끗한 정치 실현을 위하여 온 힘을 기울려 주기를 바란다. 진정한 민주국가 대한민국을 위해서 각자의 소임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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