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은퇴
JP 은퇴
  • 승인 2004.04.2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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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1961년 5,16 군사혁명의 새파란 막후 실력자로 군부정치의 일약 주역으로 등장한지 43년 만이다. DJ, YS, JP라는 "3김"시대의 주역을 이뤘던 그는 40년 한국 정치사의 명암을 이루면서 자신을 마지막으로 3김시대 역사속에 파묻었다. 한국전의 영웅 맥아더의 귀거래사 처럼 "조용히 사라져간 노병"이다.

▼김 총재는 1961년 처삼춘인 박정희 장군의 5,16을 주도한 후 혜성처럼 한국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군사정권의 정권보위를 위해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나르는 새도 떨어트리는 막강권력을 휘두를때가 약관 35세, 그는 군사정권 정치참여의 길을 트기 위한 공화당 사전조직을 지휘하였고 박정희정권을 등장시킨 사실상의 막후 실력자이기도 했다.

▼이것 저것 골치 아프면 그림 그리는 화구 하나만 챙겨 들고 동해안 어느 외딴 섬으로 깊숙히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음악도 즐겨 아코디온을 키며 자신을 달래기도 했다. 일필휘지의 글씨, 전문화가의 경지를 넘어선 그림솜씨, 그리고 음악까지 다재다능의 멋장이었다. 이런 팔방미인격의 그를 "르네상스 정치인"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그만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화려함 만큼이나 정적도 많았다. 공화당 시절, 또 신공화당으로 이어지는 정치와중에 정적들에게 몰려 두번씩이나 "자의 반" "타의 반" 외국으로 몸을 사려야 하였고 그래도 국내에 들어오면 다시 중용되어 총리만 두번씩이나 역임했다. 5,18 신군부의 아우들에게는 소장된 그림과 제주도 귤밭을 빼앗기는 수모도 겪었다.

▼DJ, YS의 "양김"시대에 들어와서는 그의 정치적 힘을 업고 JP라는 "3김시대"를 이뤄 서로의 정치적 이해에 따른 "합종연횡"의 묘한 관계를 유지했다. 어쩌면 한국 근대정치의 풍운아로서 그의 면모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에 떨어진 정치인은 사람도 아니라는 말처럼 이번의 낙선이 아니었다면 JP시대가 더 연장됐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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