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근본을 바로세우자
교육의 근본을 바로세우자
  • 승인 2004.04.22 16: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소위 ‘강남리포트’라 불리는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신입생의 사회적 성격과 교육 효과에 관한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사교육의 팽창으로 인해 학력 세습현상이 확대되고 저소득층의 배제현상이 발견된다고 보도되면서 이것이 평준화 정책의 실패 증거라는 등의 고교평준화 논쟁이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평준화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유발하므로 폐지해야한다는 주장과 평준화폐지는 현재의 대학서열에 기인한 학벌구조를 고등학교까지 확대할 뿐이라는 주장이 맞서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한 단언을 내리기 어렵다고 본다. 오히려 이러한 논쟁은 해결점을 찾기보다는 소모전으로 끝날 수 있어 사회적 실제에 대한 경험적 판단 없이 결국 교육행정가의 철학적 판단이나 정치적 결정에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의 교육제도가 갖는 한계를 공론화하기보다는 학부모의 교육관이나 학벌위주의 사회풍토로 전이시킴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는 데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지난 2월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대책이 발표되고 각 지역단위의 교육청에서 작성한 실행계획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현재 학생들의 교육이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학부모의 왜곡된 학습관과 학벌위주의 사회풍토가 만연하여 선행학습이나 주입식 문제풀이식 과외가 극성을 부리게 되었고, 그 결과 학생들이 학교교육에 흥미를 상실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이 저하되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사교육과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연간 13조 6천억으로 추정되는 사교육비의 폐혜를 없애고자 한 정부의 대책에는 일면 수긍이 간다. 그러나 본질을 호도하지 말자. 공교육부실의 책임이 학부모나 학벌구조라는 사회풍토에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모 일간지에 실린 교육행정 담당자의 글을 인용해보자. “모든 문제점을 교육정책의 잘못으로 돌리고 급기야는...내 자녀가 다른 자녀보다는 모든 면에서 앞서야 한다는 이기적인 생각만으로 중무장한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지 않았나...이러한 인식이 결국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고 많은 교육의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고 본다...(중략)...공교육의 책무와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적 협력은 없고 교육수요자의 욕구가 거세다보니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단편적인 정책적 노력이 교육의 큰 틀을 지키지 못하고...” 한 마디로 정부가 제공하는 공교육을 무력화시킨 장본인이 학부모의 이기심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육은 정부가 공급하는 것이 당연하고 시장에 맡겨서는 안된다는 권위주의적 믿음까지도 들어있다.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정부가 발표한 특단의 ‘사교육비 경감대책’은 학교교육의 혁신으로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취지이며, 과외나 학원에 빼앗긴 학습기능을 공교육의 역할로 만들고자하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외방송은 해결책이 아니라 기술적인 처방이다. 오히려 하향평준화를 가져와 공교육을 부실하게 만들 수도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수학능력시험을 쉽게 하고 대학의 본고사를 폐지하여 과외를 받을 필요가 없도록 하겠다는 정책이 유례없는 사교육비의 증가와 학생의 탈학교화를 촉진하지 않았던가? 자기 자식이 공부를 덜해서 학력이 저하되는 것을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인성을 갖춘 학생을 키워내지 못해서 학교를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학교가 학원보다 공부를 덜 시키고 잘 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았다는 말이다. 정규수업과 EBS방송만으로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믿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많을까? 버젓이 실시되고 있는 0교시수업, 보충수업, 자율학습으로 학생들을 잡아두는 “시간”이 늘면 사교육 투자시간은 줄 것이지만, 그렇기 위해서는 방송과 방과후 수업이 사교육보다 효과적이어야 한다. 또한 누구에게나 개방된 방송교육이 입시에서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많다면 여전히 사교육은 극성을 부리게 된다.

필자의 생각은 공교육부실의 원인을 학부모로 돌려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사교육비 줄이는데 목표를 두는 단기처방보다는 교육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데 두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학교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이 번창한다는 생각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하는 말인가? 학교교육에서의 교육서비스가 교육부의 지침과 통제에 의해 획일적으로 제공되어서는 안되며, 교육현장의 문제는 교육주체들간의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해결하도록 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획일적인 처방전만을 쓰지 말고 교육과 교사의 질을 높이는데 더 많은 투자를 하길 바란다.

송정기<전북대 사회학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