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라밭 축제
청보라밭 축제
  • 승인 2004.04.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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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청보리 밭은 보기만 해도 싱그럽다. 어디에서인가 불어오는 바람에 묻어오는 보리내음도 상큼하기만 하다. 한쌍의 젊음들이 보리밭을 거닐며 나누는 "보리밭 밀어"도 더없는 멋이다."청보리는 우리에 진한 향수와 정서를 안기는 전원의 시"라고 청록파(靑鹿派) 박목월 시인은 말했다. 지금 4월 중엽이 이 청보리의 절정이다.

▼낭망과 향수의 보리밭 이야기를 더 끄집어 낸다. 1950년대 초에 나온 "보리밭"노래가 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박화목 시를 작곡가 윤용하 선생이 부산 피난시절에 곡을 달았다.

▼보리밭에 얽힌 이야기 하나가 더 있다. 1920년에서 75년까지 살다간 "천형의 나병(癩病)시인" 한하운(韓何雲)의 "보리피리"라는 시다. 한하운은 함경도 함주태생으로 이고장 이리농림과 북경대학을 나온 인테리다. "보리피리 불며 닐닐니리야 닐리"라는 그의 보리피리 시는 병마에서 생의 희망을 찾는 절규다. 그는 생의 애착을 파랗게 익어가는 보리에 걸었다.

▼이밖에도 "누런 황토길"은 익산 황등에서 남도 소록도(小鹿島)까지의 가도가도 먼 전라도 길을 읊은 시다. 보리피리와 함께 한하운 시의 백미다. 그러나 우리 보리밭의 보리는 비단 이런 낭망의 시어만이 아니다. 가난한 우리 농촌사의 애환으로서 보리이기도 하였다. 보리고개라 해서 쌀떨어진 농촌에서 보리패기만 기다리는 농민들의 애타는 심정을 그리기도 했다.

▼지난 18일부터 고창에서 청보리밭 축제가 열리고 있다.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에 있는 학원농장 20만평의 청보리 지평선이 그 현장이다. "보리밭 사잇길 걷기" "보리피리 불기" "보리방앗간에서 보리찧기" "보리밥, 보리개떡 먹기" 등이 프로그램으로 마련되어 있다. 모든 것 다 집어던지고 고창 청보리밭 축제 현장으로 달려가 옛추억에 한번 잠겨볼만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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