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탄신 459주년
충무공 탄신 459주년
  • 승인 2004.04.27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 가장 훌륭한 인물을 손꼽으라면 우리나라 국민들 대부분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꼽는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순신장군에 대한 훌륭한 전공담을 듣고 자란다.오늘이 충무공 이순신 탄생 459주년이다.

△무렵이면 그의 탄신을 가념하는 각종 축제행사가 벌어지며 충무공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있다.역사가들은 조선을 침략한 왜군을 물리치면서 나타난 그의 전략은 나폴레옹을 꺽은 넬슨보다도 훨씬 앞선 세계적인 전략가로 평가하고 있다.이처럼 왜군을 물리친 승전의 공적도 훌륭하게 평가하고 있지만 그의 인격은 더욱 훌륭한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충무공의 평생을 놓고보면 대부분 실패하면서도 가벼이 움직이지않고 인고하며 충정과 효성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훌륭한 불멸의 영웅으로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충무공은 27세때 훈련원 무과시험에서 그만 실수로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낙방했다.그러나 좌절하지않고 31세에 재도전 급제하고 만호겸 둔전관에 임명되며 당시 조선변방을 침략한 여진족을 물리치는 등 전공을 세웠으나 병사 이일의 모함으로 파직,백의종군하게 된다.그후 전라도 관찰사군관,정읍현감에이른다.그리고 유성룡의 추천으로 절충장군,진도군수를 지내고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된다.

△이때 그는 왜구의 조선 침략을 예견하고 군사를 훈련시키는 한편 그 유명한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어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그의 나이 47세,임진왜란시 그의 탁월한 전략으로 세운 전공은 너무 훌륭하다.그러나 원균의 모함으로 한양에 끌려와 죽음을 당할뻔했다.당시 정탁이라는 재상의 변호로 겨우 풀려나 권률수하에 백의종군하게 된다.△정유재란때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돼 겨우 12척의배를 이끌고 133척의 왜군을 격퇴한 대승전의 명량해전.적탄을 맞고 장렬한 전사를 하지만 노량진해전의 승리는 풍전등화에 놓인 우리조국을 구한 것이다.만일 원균의 모함에 목숨을 잃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란 끔찍한 생각이 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