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란(訃音欄)을 살리려면
부음란(訃音欄)을 살리려면
  • 승인 2004.04.2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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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50년 전 일이다. 6. 25전쟁이 휴전하던 이듬해 봄, 엉뚱한 책 한 권이 찍혀 나와 미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북한에서 풀려난 윌리엄 딘 소장이 3년 간의 포로생활을 구술하여 쓴 ‘딘 장군의 이야기’(General Dean's Story)가 그 책이다. 딘 장군은 트루만 대통령이 한국에 급파한 보병사단의 선봉장으로 공포의 대상이던 소련제 T34탱크를 깨뜨려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적을 주춤하게 한 장본인이다. 해방 직후엔 첫 총선을 치르고 대한민국 정부를 세운 군정장관이기도 한 그는 워커 미 8군사령관으로부터 이틀 만 더 대전을 버티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이처럼 한국과 인연이 깊은 미군 장성이 초장부터 포로가 된 것도 전사에 남을 일이지만 이승만 정부가 잽싸게 부산까지 후퇴한 판에 대전사수 명령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다 길을 잃은 우직한 군인 상이 화제를 뿌렸다. 운전병은 죽고 자신의 찝 차는 부상병들에게 양보한 채 포로가 될 때까지 복숭아를 따먹으며 35일간 무주, 용담, 진안일대를 헤매며 동키호테 처럼 버틴 것이다.

딘 소장하면 떠오르는 한국인이 있다. 그는 지난달 작고한 전 문공부장관 이규현씨다. 김일성 대학 교수였던 이씨는 전쟁이 나자 징발되어 붙잡혀온 딘 소장의 통역을 맡은 것이다.

제네바 포로협정에 실낱같이 기대고있던 그는 적진에서 뜻밖의 민간인을 만났다고 썼다. 이씨에 대해 11쪽이나 할애한 것을 보면 그들은 단순한 포로와 통역을 넘어서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간의 인간성을 발견하고 놀란다. 고집불통 무골로 만 알았던 포로가 음악과 그림을 아는데 놀랐고, 포로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몹시 편안해 보이는 인테리 통역을 만난 것이 놀라웠다. 첫 대면에서 통역이 “불편한 점이 있으면 말하라”고하자 포로는 ”화장실이 제일 급하다”고 말문을 텄다. 그에게는 이질설사와 언어불통으로 인한 고통이 죽음의 공포보다 컸던 것이다.

하지만 혹독한 심문에도 딘 소장은 입을 열지 않았다.

자물쇠 같이 잠긴 그의 입을 열 마지막 길은 고문 뿐 이었다. 포로의 생사여부가 비밀에 묻혀있어 “고문으로 죽더라도 아무도 모를 터”라고 심문자들은 으름장을 놓았다. 허나 고문은 가해지지 않았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전쟁 속에서 “당신은 죽지 않는다. 가족과 만날 것이다.“라고 통역이 자신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장군은 쓰고있다. 포로에게 소설책과 최신 러시아 잡지를 건네준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딘 소장의 생존사실을 터뜨린 것은 이씨였다. 그는 유엔군의 평양 입성 때 자유인이되어 진상을 밝힌 것이다. 세계의 관심이 이씨의 입에 쏠리던 순간이었다. ”딘 장군은 (온갖 고초에도 자기나라를 배반하는) 어떤 정보도 누설하지 않았다“고 증언하자 트루만 대통령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장군의 부인을 백악관에 불러 의회제정 최고훈장을 주었다. 평양을 거쳐 압록강까지 끌려 다녔지만 프랑스와 중국기자의 인터뷰가 잇따르는 등 국제 여론을 타게되어 포로의 생명만은 어쩌지 못 했다.

이씨가 타계함으로서 이제 포로도 통역도 가고 전쟁의 기연 속에 피어난 두 사람의 인간성을 말해줄 사람은 없다. 필자가 여기 딘 장군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은 이 전 장관의 부음을 전하는 언론의 부음란에 단 한 줄의 언급도 없기 때문이다. 고인이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을 나와 대한공론사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것으로 되어있을 뿐 그사이에 벌어진 이 드라마 같은 인생의 가운데 토막은 잘려 나가고 없다. 냉전 탓이라지만 세상이 다 아는 엄연한 사실을 지레 먹칠하는 것은 냉전을 녹이기보다 더 얼어붙게 하는 일이 아닐까.

한국 언론의 부음란이 커져 선진국 언론처럼 다양한 삶을 거친 숱한 이야기들이 쏟아지는 것은 반길 일이다. 허나 고인이 한 일보다 밋밋한 경력 나열에 치우치는 예가 많다. 그러기에 토마스 제퍼슨은 자신의 묘비명을 손수 ?는지 모른다. 미국의 3대통령 대신 “미 독립선언문을 쓰고 버지니아대학교 건물을 설계한 제퍼슨 여기 묻혀있노라”라고. 어떤 자리보다 어떻게 살다갔는지 고인의 발자취를 비쳐주는 것이 부음란을 살리는 길이다.

최 규 장<재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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