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馬耳山) 가는 길
마이산(馬耳山) 가는 길
  • 승인 2004.04.3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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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전령사 개나리, 진달래, 산벗마저 자취를 감추고 연초록옷으로 곱게 갈아입을 이맘때면 친한 벗 한둘쯤 동반하고 야트막한 산길을 걷는 멋도 세속의 번뇌와 스트레스를 떨치게하는 현대인의 비법이리라.

마령면 소재지를 지나 진안행 도로를 따라 나서면 화전마을 어귀가 나온다. 여기에서 일 마장쯤 걸어 들어가면 충신과 유림 40명의 위패를 모신 이산묘가 숙연한 자세로 서 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왼쪽으로 계곡을 따라 감아 돌면 고려말 고승 나옹화상이 시방(十方)세계를 관(觀)하며 삼매에 들었다는 너럭바위가 나온다. 동으로 양 가슴에 자식을 안고 결연한 기상을 품으며 위풍을 자랑하는 마이산 그리고 서쪽으로 달마상 처럼 험상궂은 도적봉이 머리를 조아린다.

그뿐이랴! 우람한 노령산 자락의 깎아지른 벼랑이며 울창한 송림, 청량한 바람, 바위 뜸으로 흘러나오는 비단결 같은 물,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경관에 우선 감탄사가 연발한다. 심호흡을 고르며 계단을 따라 난간을 짚고 내려가면 ‘고금당’이라고 쓴 현판이 눈길을 모은다. 이곳은 층암절벽에 뚫린 동굴로써 ‘나옹굴’이라 부르는 일종의 참선굴이다.

23세의 젊은 나옹이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고 한다. 그는 참선을 통하여 진아(眞我) 즉 ‘참나’를 체험하고 불성(佛性)의 자각을 통하여 일체만물이 바로 ‘나’이며 내가 곧 나의 주인이라는 자기 실상을 확인하는 시를 이렇게 지어 읊었다.

참선하는 방에 조용히 앉아(禪佛場中坐)

정신차려 눈뜨고 똑바로 보니(惺惺看眼看)

보이고 들리는 것 다른 것 아니고(見聞非他物)

원래의 옛 주인은 나일세(元是舊主人)

고금당(나옹굴)을 나와 다시 동쪽으로 가르마 같은 길을 따라 오르면 금당사가 나타난다.

최근에 대웅전과 요사체가 새로 건립되었고 목불좌상 삼존불과 괘불이 봉안된 유서가 깊은 사찰이며 그 중 괘불(걸어놓는 불화)은 영험이 있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느 해 봄, 극심한 가믐이 들었다. 고을 주민들이 이곳에 몰려 와 비를 내리게 해 달라는

간청을 했다. 나옹스님은 아무 말이 없이 앉아 있다가 ‘신불께 기우제를 올리도록 합시다.’ 한 마디를 남겨 놓고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주민들은 제물을 서둘러 준비하고 스

님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으나 3일이 지난 뒤에야 나타났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주민들은 스님 곁으로 우르르 몰려 와 매여 치려는 순간, 스님은 가까스로 진정을 시키고 진두

지휘에 나섰다. ‘보살님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고 절의 뒷뜰에 일백척의 구덩이를 파는 일부터 하시오. 파는 동안 일호의 숨소리도 내지 말고 정성껏 말이요’ 이렇게 하여 일백척의 구덩이가 완성되는 순간 미상불 일백척의 구덩이에서 괘불(掛拂)이 나왔다. 대웅전 앞에 괘불을 걸고 기우제를 올리니 곧장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 후 신도들은 물론 주민들까지도 나옹스님을 신승(神僧)으로 받들게 되었고, 지금도 가뭄이 들면 이 곳 금당사에 괘불을 걸어 놓고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다.

금당사를 뒤로하고 다시 천혜의 절경을 이루는 기암절벽, 빽빽한 수림, 예서제서 지저귀는

산새와 벗삼으며 삽상한 바람을 몰고 언덕을 넘어서면 한 장의 그림책을 넘기듯이 나타나는

새로운 풍경! 이 곳이 호남의 내금강 마이산이다.

마이산을 바라보는 순간, 누구인들 이 같은 느낌이 가슴을 밀지 않으랴.

옛날에 듣던 마이산(昔聞馬耳山)

그 모습 말귀 같다기에(其像如馬耳)

오늘따라 나서보니(今日發一見)

의심 없는 말귀일세(馬耳更無疑)

봄바람 타고 마이산을 휘감는 초록향기에 취하게 된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맛보게 된다. 천지사이에는 각각 주인이 있어 터럭 하나라도 취하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직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가져도 금할 사람이 없고 이를 써도 다 함이 없다고 하였으니, 세상에 더 부러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금세 세속의 찌든 마음이 노래되어 흐른다.

아!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고 호연지기의 기상을 드높여 주며 언제나 머물고 싶은 성스런 숨결이 어린 곳이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 전북에는 천혜의 보고 100대 명산이 있다. 우리가 바라만 보고 짓밟아 놓기만 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자연이 병들지 않도록 지키고 가꾸고 보호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의무와 책임감을 가지고 말이다. 의무와 책임감이 강한 사람만이 천혜의 보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오 정 민<익산교육청 장학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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