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어머니의 눈물
[여성칼럼]어머니의 눈물
  • 승인 2004.05.0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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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드디어 큰 마음을 내어 우리 가족 지정(?)병원인 H한의원을 찾게 되었다. 침을 맞고 있는 동안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시어머니의 목소리. 병원에서 마주친 어머니는 반가움보다 걱정과 우려가 섞인 표정으로 눈이 동그랗다.

  “아가, 네가 여기 어쩐 일이냐? 어디 많이 아프냐?”

  최근 들어 지병인 고혈압과 당뇨가 심해져 급기야 며칠 전에는 끙끙 앓아 누우셨다는 시어머니, 그런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 뵙지도 못하다가 병원에서 마주치게 되었으니 며느리의 민망함이 이를 데 없다. 우리 가족을 잘 아는 병원의 간호사가 며느리도 와 있다고 전하는 말 중에 “며느리가 많이 아파서”라는 표현에 어머니가 매우 놀라신 모양이다.

  어머니는 치료 간간이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많이 내셨다. 평소 참을성이 많고 인내심이 강한 분이어서 웬만해서는 아프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분인데, 얼마나 고통이 심하면 저렇게 신음하실까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쓰리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남편이 합류해서 시부모님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 동안 얼마나 섭섭하셨는지 “부모는 열 자식을 거두는데, 자식은 한 부모 못 섬긴다는 말이 맞더라”며 쓸쓸하게 웃으셨다. 유난히 어머니 정이 깊은 남편은 기어이 눈물을 보이고 나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저녁 식사 내내 그 동안 밀린 이야기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어머니는 “나는 그래도 괜찮다만, 네가 아프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우리 큰며느리는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많이 아프다고 하니까 내 가슴이 철렁했다. 너는 아프지 말아야 한다….”

 말씀을 잇지 못하시던 어머니는 기어이 숟가락을 놓으시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눈물 앞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나는 괜찮다”는 말씀이 폐부를 찌른다. 그것은 어머니의 성격상 ‘매우 괜찮지 않은 상태’를 암시하며 ‘나는 나이 먹어서 매우 아프고 힘들지만, 그래도 너는 젊으니까 몸 관리 잘 해라’는 의미가 함축된 말씀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올해로 결혼생활 12년째에 접어드는 동안 시어머니는 나에게 상처받을 말씀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분이다. 큰며느리이면서도 며느리 노릇 제대로 못하는 나의 부족함은 스스로 생각해도 모자람이 많다. 방송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도 시어머니 입장에서 이해 안하고 싶으면 흉이 될 일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일하는 며느리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 적극 지원해주는 분이다.

  어느 자녀인들 부모의 사랑, 특히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 앞에 고개숙이지 않을 자녀가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시어머니는 며느리인 내가 봐도 참으로 어질고 자상한 분이다. 70평생 6남매 뒷바라지에 몸 성할 날 없던 어머니,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이기에 그 정성 또한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봐도 감동스럽다. 그 어려운 시기에 6남매 교육시키고 출가시켜 이제 한 시름 놓고 여생을 즐길 법도 하건만, 어머니는 여전히 최선을 다해 살고 계신다. 부족함 많은 며느리를 품어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 며느리 걱정에 눈물까지 흘리는 시어머니 앞에서 나의 불효가 더욱 크다. 시어머니는 나를 며느리라고 생각지 않고 딸처럼 생각하셨던 것이다. 가뜩이나 눈물 많은 어머니께 더 이상 며느리로 인해 눈물을 보태지 않도록 더 건강하게 살아야겠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드리진 못해도 열심히 사는 것으로 어머니께 보답할 수 있다면 더욱 더 힘을 내어 열심히 살아야지 싶다. 덕성스럽고 온화한 우리 어머니, 고부간으로 맺어진 인연이 너무 감사하다. 어버이날에 바치는 선물치고 너무나 형식적이고 옹색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말만큼 절실한 바람은 없다. “어머니, 부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김사은<원음방송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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