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장수와 부모님, 물리학자의 길
고향 장수와 부모님, 물리학자의 길
  • 태조로
  • 승인 2004.05.1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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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학계에서는 젊은 과학자라고 불리지만, 물리학자의 길에 접어든지 벌써 20여년이 지났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미국에서 11년 그리고 한국에서 10년간 활동하면서, 국제학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오르고 업적들을 인정받아 국제적 학술상들을 수상하는 보람도 가지게 되었다.

 돌이켜 보건대 내가 물리학에 매료되어 이만큼 학자로서 성장한 배경에는 고향인 장수, 그 곳에서 기반을 틀으셨던 선친들과 무관하지 않았나 싶다.

 나의 본적은 장수 번암면 논곡리(복성리) 62번지, 전주이씨 무림군파 5대째 선대께서 경남 하동에서 이주하여 기반을 틀었던 곳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산밖에는 보이지 않고 대문앞 시냇물은 바위사이를 쏜살같이 흐르는 두메산골 번암의 옛집 풍경은 아직도 머리속에 생생하다.

 애석하게도 내가 장수와 같이 한 시간은 유아시절 얼마되지않아 끝나고 말았다.

 부모님(부친 이문호, 모친 박양순)께서 어려웠던 가세를 일으키고자, 당신들의 학업은 포기하시고, 장손으로서 아래 두 동생들 (이재식 남서울대학교 이사장, 이춘근 동부수도학원 원장)의 학업을 도맏아 뒷바라지 하는 눈물겨운 희생의 업을 떠맡어 50년대 말 서울로 집안을 이주하셨다.

 가끔 돌아가 지낸 당시 고향의 모습은 어제같이 머리속에 생생하다. 호남선열차는 왜 그리 지루하게 길었으며, 번암까지 길은 왜 그리 멀었던가.

 삐딱한 산비탈에 천수답으로 어렵사리 마련한 논들, 물방아를 밟아 물을 대던 농부들, 냇물에서 같이 놀던 동네아이들, 산에 가려 반쪽만 보이는 하늘 모두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돌이켜보건대 자연을 느낀 이런 시간들이 내게 없었더라면, 바로 자연의 질서를 터득하는 물리학에서 독창적 연구의 지혜를 키울 기회가 없으리라.

 내가 물리학자로서 성장한 배경에는 부모님(부친 이문호, 모친 박양순)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부친께서는 장수의 산세와 더불어 사신 분이시다.

 어려운 집안의 가세를 일으키고자 어린 두 동생의 학업을 부모처럼 뒷바라지 해야하는 상황을 정작 당신 자신의 고등교육을 포기하면서까지 묵묵히 감내하셨던 것이 안타깝다.

 학업을 계속하셨더라면 부친께서도 훌륭한 과학자가 되셨으리라 생각된다. 어릴적 당신의 물건 만드는 손재주에 감탄하곤 했는데, 천부적인 재능에다 장수의 험한 산세가 도리어 당신에게는 좋은 과학실험실을 제공한 것 같다. 내 연구분야는 원자보다 더 작은 삼라만상의 기본단위를 밝혀내는 작업이다.

 150억년전 우주가 대폭발로 탄생하여 진화된 과정의 연구는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어서, 다른 분야보다 통찰력과 직관, 끈기와 승부근성, 그리고 집중력이 더욱 요구되는 분야이다.

 이 점에서 내게 지대한 영향을 주신 분은 모친(박양순)이다.

 집안이 어려운 여건을 헤쳐나오는데 가장 중요한 근간을 이루셨던 분이신데, 당신의 교육과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었더라면, 숙부들과 자식들의 고등교육을 위해 당신을 희생하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모친의 성품은 모두 장수에서의 어려웠던 소시적에 기인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내 연구의 주요내용은 삼라만상의 구성단위가 원자같은 점이 아니라, 고무줄같은 끈이라는 관점이다. 아인쉬타인의 상대론은 틀렸음을 보인 이 ‘끈이론’은 21세기 과학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과 연구의 유연성은 모두 고향 장수와 같이 험준한 산골이 나의 부모님과 나에게 경험을 통하여 전수해준 결실이다.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자연의 신비를 파헤치는 과학자의 길을 가면서, 자주 고향을 찾아, 새로운 발상들을 구상해보려 한다.

이수종<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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