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이 주는 역사적 교훈
탄핵심판이 주는 역사적 교훈
  • 태조로
  • 승인 2004.05.1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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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결정이 내려졌다. 공직선거법이 규정하는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 위반, 헌법이 규정하는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권 위반의 점은 발견되지만,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단절시킬 정도로 중대한 파면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각결정의 요지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표현들이 있다. 하나는 탄핵심판절차는 ‘정치적 심판절차가 아니라 규범적 심판절차’라는 것이다. 이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하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규범적으로 해석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이 조항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서 정치적으로 심판해 버렸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직무행위에 관한 모든 사소한 법위반행위를 처벌한다면 법익형량의 원칙에 위반된다.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의 경우를 말한다’는 부분이다. 따라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국론의 분열현상이나 정치적 혼란을 감수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판시사항의 중요한 내용이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을 때’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것은, 누구의 관점에서 볼 때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을 정도인가 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국민의 관점이다. 그러한 국민의 관점은 탄핵반대 촛불시위를 통하여 정치적으로 표현되었고, 4.15총선을 통하여 법적으로 확인되었다. 물론 엄밀한 법적 관점에서 볼 때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국민의 여론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그것이 가져오는 정치적 파급효과가 워낙 큰 것이기 때문에, 헌법재판관들은 그러한 파장까지도 고려하면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탄핵사태의 중심에는 주권자인 국민이 서 있었고, 우리 국민은 그 어느 나라 국민도 경험하지 못했던 중요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학습을 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 국민의 법의식이 그만큼 고양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이다. 헌법재판소결정문은 대통령의 일부 위법행위를 지적하고 있다. 그것이 다수의견일 수도 있고, 다수의견 속에 섞여 있는 소수의견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 되었건 노무현 대통령은 향후 정치적 언행에 과거보다 훨씬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대통령의 언행 하나로 정치권이 파동을 치고 여론이 비등해지는 사태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신중하게 정리된 언행과 일관되고 개혁적인 정책을 가지고 국민의 삶에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

이번 탄핵사태를 주도했던 야당이나 (이런저런 의구심이 있지만 표면상으로는) 탄핵소추안 처리를 저지하려고 했던 여당이나 귀중한 정치적 경험을 했을 것이다. 우선 한나라당 등 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자체가 헌법위반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야당은, 국회의원들이 헌법이나 법률에 근거규정만 있으면 무엇이나 의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정치적 파장과 손실을 몰고 올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정치적 감정에 따른 국가중대사 처리로 한나라당은 의회지배권력을 상실해 버렸고, 민주당과 자민련은 그 존폐위기로까지 몰리는 상황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이 전하는 메시지는 국회의원이 의안을 처리할 때 헌법해석과 법률해석을 정치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규범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이제 명실공히 국정을 책임지는 정당이 되었다. 4.15총선을 통해서 정부권력과 의회권력을 일치시켜 준 국민의 뜻, 즉 헌법재판소 결정의 중요한 변수가 되었던 국민의 뜻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그것을 아전인수식으로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로 읽는다면 열린우리당 역시 예기치 못한 정치적 패착을 둘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의 뜻은 국정운영의 책임을 확실하게 맡긴 이상 그 책임도 엄중하게 묻겠다는 것이다.

김승환(전북대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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