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적인 예가 익산시에서 발주하고있는 폐기물 처리시설 부지선정 문제인데 여기에 익산시 6개면이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마디로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 전개되어 시당국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지만 어떻든 이 행복한 비명은 우리 사회가 무엇인 주민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고 그들이 선택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 닳게 되었다는데 고무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실로 산업사회로 치 닫으면서 우리는 무수한 생활 부산물을 낳고 있다. 이 중에는 재생가능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불가피하게 매립하거나 소각해야할 쓰레기나 기타 혐오물도 있다. 이것은 어디엔가 처리시설을 해야한다. 그런데 이것은 서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디에 버리겠는가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국민의 인식에 우려와 개탄을 금치 못했다.
물론 여기에는 그만한 대가가 주어져 주민들로 하여금 선택의 요건을 마련하고 또 철저한 위생환경 처리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그릇된 관념이나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결코 자기에게 유리하고 편리하게 선택할 수 는 없다. 한가지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가지는 감내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의 익산시민들은 이러한 선택과 양보의 미학을 충분히 익히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절대반대라는 맹목적 적인 이기주의가 지배되고 있어 서로 관계를 불편하게 한다. 아무리 혐오시설이라 하더라도 그보다 주민 이익이 크다고 판단되면 선택할 줄 아는 시민정신이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사선 폐기물 유치장도 반대만 할 일이 아니라 깊이 생각할 문제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