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가 없는 사회, 법이 없는 사회
예가 없는 사회, 법이 없는 사회
  • 승인 2004.05.25 1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영화“노인을 버리는 산”을 보았다.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갓난아기, 어린아이 다섯식구가 살고 있었다. 너무나 가난하여 먹을 것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았다. 부부싸움의 원인 중에는 어머니문제도 한몫 끼었다. 다리를 저는 어머니는 노동력도 없고 식량만 축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름대로 가정에 보탬이 되고자 가막조개를 잡아 삶아 놓기도 하지만 며느리의 구박은 끝이 없었다.

그러던 중 지방관이 60세 이상 노인은 산에 버리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아내는 쥐약까지 사 가지고 와서 빨리 버리라고 아우성이다. 아들 다카치는 도사를 찾아가 어머니를 살릴 부적을 써달라고 한다. 다카치는 부적을 받아 어머니를 엎고 산으로 간다. 산 속 깊이 들어갈 즈음에 천둥이 쳐 다카치는 놀라 넘어진다. 어머니는 아들을 들쳐 엎고, 천둥 번개로 기둥이 넘어지는 현장에서 어린 아들을 살리려고 다리까지 다쳤던 기억을 회상하며 걷는다. 그때 충격으로 아들은 지금도 겁쟁이로 살고 있다.

다카치는 해골과 시체가 즐비한 산에 어머니를 홀로 놓고 올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해가 지기 전에 빨리 가라고 성화다. 아들은 어머니 성화에 못 이겨 집으로 돌아오다가 산기슭에서 굴러 기절을 한다. 날이 새어 깨어났을 때는 갈 길을 알 수 없었다. 아들은 가막조개를 발견하고, 가막조개를 따라가서 어머니를 찾아 모시고 집으로 온다.

그때 대관이 찾아와「치지 않고 울리는 북」을 만들라며 작은 북 하나를 내 놓는다. 문제를 풀지 못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고 겁까지 준다.

왜 내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느냐 ? 물으니, 신의 뜻이라 한다. 마루 밑에 숨어 있던 어머니는 북에 작은 구멍을 뚫고 말벌을 많이 잡아넣고, 그 구멍은 꼭 종이로 막아 밤에 혼자 들으라고 알려준다.

아들은 북을 대관에게 바치고, 대관은 지방관에게 바친다. 다카치는 대관이 불러 가보니 지방관이 벌에 쏘여 죽어서 내가 살았다며, 소금과 쌀을 주고 ‘늙은 부모 버리는 법’을 파기한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고려장과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에는 노동력이 없는 노인들은 내다 버렸다고 생각된다. 그러다가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부모에 대한 효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부모에 대한 효는 자식을 낳아 길러 주신 은혜에 대한 보답이다. 예기에 어머니가 자식을 낳을때 3말 3되의 피를 흘리고, 기를 때 8섬 4말의 젖을 먹인다고 한다. 그래서 효(孝)자는 늙을 노(老)자에 아들 자(子)자가 떠 받히고 있는 글자다.

까마귀는 어린 자식을 먹여 키우면, 자식이 늙어 제 구실 못하는 어미 먹인다고 한다. 그래서 까마귀를 효조 또는 자조반포(慈鳥反哺)라고 한다.

공자는 부모가 살아 있으면 공경하고, 돌아가시면 장사지내고, 그 후에는 제사로 모셔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돌아가신 뒤 소 잡고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는 살아 계실 때 닭, 돼지를 잡아 대접하는 것만 못하다고 가르친다.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되어 종족을 보전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다. 그래서 맹자는 불효 중의 불효가 무자식이라고 가르친다. 요즈음 부모들은 갈수록 오래 사는데, 자식을 낳지 않고 미모만 가꾸려는 여인이 많아지고 있다. 더더욱 늙은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는 풍조로 까마귀만도 못한 부부가 늘어가고 있다. 자기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남의 부모를 사랑하는 자는 덕에 어긋나고,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남을 사랑하는 자는 예에 어긋난다. 예는 천하의 기본이면서, 인간의 기본 원리이다. 도를 통하면 우주만물에 이르고, 예를 행하면 인간의 참 도리에 이른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한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에 부부의 날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효는 예전만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법은 있고 예가 없는 사회와 예가 있고 법이 없는 사회 중 어느 쪽이 더 인간의 참 도리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상우(전북경찰청 정보통신담당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