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75>힘이 불끈...침실로
평설 금병매 <75>힘이 불끈...침실로
  • <최정주 글>
  • 승인 2004.05.28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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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금련의 봄 <75>

“할머니가 어떻게요?”

“내가 몰래 가서 목이라도 졸라버릴까? 아파서 꼼짝못하는 무대 놈 한 놈 쯤 죽일 힘은 남아있다구.”

왕노파가 흐흐 웃었다. 반금련이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할머니께 그런 험한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요.”

“설마 그렇게야 하겠어. 이걸 써 봐.”

왕노파가 허리춤에서 약봉지 하나를 꺼내 주었다.

“머예요?”

“약이라구. 내가 살기 고단할 때,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할만큼 폭폭할 때,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릴려고 준비해둔 것이지. 이것만 먹으면 작은 고통도 없이 죽는다고 의원이 말했구만.”

“독약이군요.”

“마침 무대가 턍약을 먹고 있잖아. 탕약을 닳이면서 이걸 넣어. 하면 감쪽같이 죽을 것이니까. 누구보다 서문 나리가 원하는 일이구만.”

“그래도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

“결단을 내리라구. 무대나 서문나리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라구.”

“일단은 줘보세요.”

반금련이 마지못한 듯 약봉지를 받아 들고 찻집을 나왔다.

“무대를 죽이고 나면 큰 소리로 통곡을 하라구. 이웃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 말야. 하면 내가 뒷수습은 해줄게.”

왕노파가 뒤에서 말했다. 

‘모르겠어요, 저도. 서문나리가 탐이 나고, 무대보다 백배 천배는 사랑하지만 살인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반금련이 중얼거리며 이층을 올라와 막 문으로 들어설 때였다.

“이년, 이 화냥년. 그 새를 못 참고 사내를 만나고 와?”

어둠 속에 서 있던 무대가 반금련의 머리채를 휘어 잡았다.

“왜 이래요, 당신. 왕할멈이 바느질을 마저 해주지 않으면 품삭을 못 주겠다고 하길래 가기 싫은 걸 억지로 가서 겨우 마무리를 지어주고 오는데요.”

“핑게는 좋다, 이년.”

무대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반금련을 질질 끌고 침실로 들어갔다.

경황 중에도 반금련이 손에 들고 있던 약봉지를 침상 밑에 쑤셔 박고는 두 손을 들고 썩썩 비벼댔다.

“잘못했어요, 여보. 당신이 가지말랬을 때 안 가야했는데, 잘못했어요. 하지만 바느질만 하고 왔어요. 서문나리를 만난 것은 절대 아니예요. 왕할머니께 물어보세요. 눈 뺄 내기를 해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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