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오륜유치 18년 여정의 대미
동계오륜유치 18년 여정의 대미
  • 승인 2004.06.0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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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에서 동계올림픽을 치르기 위한 본격 차비가 1986년에 시작되었다는 자료와 증언이 나와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1986년이라면 서울에서 아시아 올림픽 대회가 열린 해다. 1976년 당시 아시아지역 스포츠강국인 한국의 아시안게임 개최가 예정되었다가 반납된 뒤 꼭 10년만에 이룬 숙원이다.

 그 해 아시안게임과 더불어 2년 후의 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국력신장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국민들 마음에 탄탄히 자리잡던 시기이다. 바로 그 ‘88 서울올림픽’이야말로 이듬해부터 일어난 세계냉전구도 해체의 기폭제였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면서 세계올림픽을 머리에 그리고, 세계올림픽을 진행하면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려는 열기와 동력이 감각적으로 치솟고 분출하던 때인 것이다. 그러한 생동감이 1997년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로 이어지고 작년 드디어 2010 동계올림픽을 손에 쥘 뻔한 계제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2014 동계올림픽 개최가 가능한 단계에 있는 지금 전북은 지난 4년간의 국내후보지 유치전을 다시금 재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실정에 놓여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동계올림픽만 10년을 준비하고 IOC등 국제적 기구에 직접 홍보와 설득에 나선 것이 7년 세월인데도 국내후보지 선정의 앞길이 지극히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공정성과 예측가능성, 투명성과 신뢰성이 보장되어야 할 국내후보지 결정에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다면 그것은 곧 파행이나 외부의 영향에 의한 졸속 결정의 잘못된 전조를 말해 주는 데 다름 아니다. 뿐만아니라 상황을 불명확하게 함으로써 지역간 주민간 악감정을 유발하는 지극히 오도된 사태를 초래할 우려도 다분한 실정이다.

 18년 전에 동계오륜 유치의 희미한 그림이 그려진 뒤 전개된 과정이 치열하고, 인내를 요하고, 때로는 분개스런 우여곡절로 점철되었지만 아직도 중앙부처나 정치권, 매스컴이 우호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한 중앙의 견고한 벽을 깨지 못하면 18년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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