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과 양심적 병역거부
호국·보훈의 달과 양심적 병역거부
  • 승인 2004.06.0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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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민족은 일제하의 항일독립 투쟁 그리고 6·25 전쟁과 분단 등의 암울한 역사적 기억을 갖고 있다. 이런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성장과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자신을 희생해 가며 조국과 민족을 구한 분들의 애국심과 호국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이야말로 세대를 넘어 존경과 예우를 받아야 하는 최고의 가치이며 후손들에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갖춰야 할 올바른 근본정신을 세워주는 큰 버팀목으로 자리잡아 면면히 이어져가야 함이 마땅하리라고 본다. 이러한 선열들의 애국심과 호국정신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서 올해에도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하여 국가 유공자들의 공훈을 선양하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추모한다. 이런 때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 거부 자에게 서울 남부지법에서는 “병역법상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오직 양심상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보호 대상이 충분한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된다”는 이유를 들어 무죄를 선언했다. 그런가 하면 춘천지법, 전주지법, 성남지원, 서울서부지방법원 등에서는 “양심의 자유를 들었지만 소명이 충분하지 못하며 이는 헌법에 보장된 범위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로 볼 수 없다”며 실형을 선고하였다.

 이에 대법원에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에 대한 하급기관들의 엇갈린 판결로 인해서 국민들의 혼선과 법적 불안을 제거하기 위하여 신속히 법령 해석의 통일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것을 보고 한 편에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해외 주둔 재배치 계획(GPR)에 따라 주한 미군을 1만 2천명 정도를 감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와중에 양심적 병역 거부는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서는 한 해에 600명~700명을 감옥에 보내서 전과자를 양산하는 현행 제도를 개선하여 50여년을 일관되게 병역을 거부하는 이른 바 양심적 병역 거부 자들에게 대체복무의 기회를 제공해 병역을 대신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4대 의무중의 하나인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지켜야 할 의무인 동시에 권리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군대는 사회봉사단체가 아니다. 물론 천재지변으로 나라가 어려울 때 앞장서서 봉사를 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쟁을 대비해 존재하는 집단이다. 군대의 지속이야말로 크게는 국가를 지탱하고 평화를 지키는 기본이고 작게는 국민 개개인들의 행복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남북의 화해무드로 전쟁 발발의 가능성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고 하지만 백프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마당에 전쟁이 일어나도 ‘집총’을 거부하며 전장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 주장은 온 국민이 목숨을 걸고 나서야 할 때 타인들의 희생에 무임승차하겠다고 하는 검은 양심을 합법적으로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문연구요원, 유명운동선수, 산업기능요원 등을 대상으로 하여 대체복무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전쟁이 일어나면 이들 모두 총을 들고 전장으로 뛰어나가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 자들은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고 전쟁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요구는 대체복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대한민국의 법에 따라야 하고 법 앞에 모두 평등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병역은 이 땅을 지켜오고 지켜가야 할 신성한 일이기 때문에 이런 의무를 대체할 제도는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없는 것이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들이 있음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호국·보훈의 달” 만이라도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국립묘지를 참배하거나 독립기념관, 전쟁기념관 등을 찾아가 봐야 한다. 그것이 어려우면 우리 고장의 현충시설물을 돌아보며 선열의 숨결을 느껴보는 시간이라도 갖자. 그것이 바로 호국·보훈의 달에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다.

정성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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