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교장을 경계한다
제왕적 교장을 경계한다
  • 승인 2004.06.1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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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신문을 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강원도 홍천의 어느 초등학교장이 여교사에게 폭언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 폭언은 일반의 상상을 결코 허용치 않는, 그야말로 어이없으면서도 끔찍한 것이었다.

예컨대 “속옷은 갈아 입고 다니느냐, 교사는 교장의 하청업자다, 교장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학교를 떠나든지 북한으로 가라”따위가 그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그로 인해 여교사 2명이 병원에 입원했으며, 다른 여교사는 6개월 휴직을 신청했다.

전라북도 전주의 어느 초등학교장은 학교운영위원장의 돈 내라는 요구를 거부한 여성운영위원에게 “부담이 가면 할부로라도 낼 생각을 해야지 일을 이렇게 만들었냐”고 핀잔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해당 교장은 “할부로 내라고 말한 적이 없고, 다만 운영위원회가 운영 및 친목회비 명목으로 돈을 걷는 것까지 적극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학교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자던 소가 웃을이야기이다.

정작 문제는 다른데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원들에 대한 모금이 그것이다. “그만한 돈도 못 내면서 학교운영위원을 하려는 것이냐”는 운영위원장의 핀잔은 신성한 학교에서조차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뒤틀린 사회현상이 만연해있는 듯싶어 씁쓰름해진다.

일단 두가지 사례에서 보는 공통점은 교장으로서의 자질이 의문시된다는 사실이다. ‘속옷은 갈아 입고 다니느냐’따위 ‘변태적’모습도 그렇지만, ‘교사는 교장의 하청업자’라는 폭언은 단순히 폭언만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를 떠나든지 북한으로 가라’도 명백한 망발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어디 다른 나라 학교 교장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이 1980년대쯤으로 아주 심하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정말 그때는 그랬다. ‘교장독재’가 민주화가 덜 된 나라보다 더 심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교사는 교장의 명에 따라 교육한다’는 교육법이 바뀐지도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초?중등교육법에 “교사는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 또는 원아를 교육한다”(제20조 3항)로 되어 있는 것.

문제는 교장직도 권세랍시고 마구 휘둘러 대는 ‘제왕적’ 교장이 지금도 많다는데 있다. 그들이 미국보다 군국주의 일본식 교육을 받은 세대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무엇보다도 억압과 통제에 길들여진 교사들은 학생교육도 은연중 그렇게 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바로 그 점을 경계해야 한다. 말할 나위없이 대화는 없고 지시만 있는 그런 교육시스템으로는 국가의 인재를 길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는 교장의 방침(독단)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폐쇄적 공간이 아니다. 교사?학부모?학생 등 구성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절충?화합해 나가는 곳이다. 흔히 말하는 교육부나 도교육청의 캐치프레이즈인 ‘민주시민 육성교육’이 바로 그런게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제왕적 교장의 전횡을 직접 당하면서도 찍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교사들이 대다수라는데 있다. 역사를 보면 독재는 대중일반이 키워주니까 생기는 것이다. 이제 ‘영웅’을 양산해내던 독재 시대가 아니다.

장세진<전주공고 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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