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맥아더
6,25와 맥아더
  • 승인 2004.06.2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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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병(老兵)은 죽지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라는 명언을 남긴 미국의 5성장군 맥아더는 그의 탁월한 작전능력 만큼이나 위풍도 당당했다. 야전 점퍼에 머리에는 별이 번쩍거리는 원수 정모를 ?고 검은 안경에 항상 파이프를 문채 작전을 지휘하는 맥아더는 흡사 영웅의 모습이었다. 그 위용이 멋지다 못해 전후 미국에서는 살아있는 군신(軍神)으로까지 추앙됐다.

▼물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다. 전후 일본점령 연합군최고사령관으로 일본으로부터 무조건항복서를 받아내고 그로부터 몇년후인 1950년 6,25전쟁 때는 UN군 총사령관으로 한국전을 지휘했다. 그리고 한반도가 거의 인민군 손으로 넘어갈 무렵 저 유명한 인천상륙작전으로 잃었던 척추를 되찾고 북진, 평양과 신의주, 압록강에 까지 다달었다.

▼그러나 그해 겨울, 중국의 100만 대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전세는 다시 역전의 고비를 맞았다. 여기서 부터 맥아더의 일생일대를 건 모험이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중공군 보급 루트인 만주폭격이다. 그러나 트루만 행정부는 맥아더의 만주폭격을 용인하지 않았다. 3차대전 발발의 위험소지가 있다는 트루만 정부의 판단이었던 게다. 여기서부터 그들의 대립이 첨예화된다.

▼그 일전이 하와이 웨이그도(島)의 트루만 맥아더 회담이다. 미 육군성은 도쿄의 맥아더사령부에 맥아더 탑승기는 대통령 전용기 도착 10분전에 내려 대통령을 지상 영접하라는 것이었고 사령관 전용기기는 대통령 전용기가 빙빙 돌고 있는데도 냉큼 착륙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는 얘기다. 필경 맥아더 전용기가 먼저 내리기는 했으나 이것이 맥아더 해임의 결정타가 됐다는 후문이다.

▼트루만은 이런 맥아더가 ?심해서 선물로 가져갔던 "쉘퍼"라는 만년필도 주지 않고 왔다고 트루만 회고록은 적고 있다. 그로부터 맥아더는 옷을 벗어야 하였고 마침내는 미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그 유명한 노병은 죽지않고 사라질 뿐이라는 말을 최후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 6,25가 올해로 54년, 맥아더가 간지도 4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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