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風水)
풍수(風水)
  • 승인 2004.07.0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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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 사상은 본래 중국에서 유래한 것인데, 풍수는‘장풍득수(臧風得水)’의 줄임말이다. 장풍이란 생기(生氣)가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기 때문에 이를 막는다는 뜻이고, 득수란 땅속에 수기가 있으면 생기가 있고, 생기가 쌓이면 지상에 복을 가져온다고 믿는 데서 장풍보다는 득수를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 풍수지리는 인간이 일찍부터 자연 속에서 삶을 영위하려고 터득된 지혜에 근본을 두고 있다. 즉 사람의 몸에 흐르는 기처럼 땅에도 길이 있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풍수지리서는 동진(東晉)의 곽박(郭璞)이 지은 「금양경(錦襄經)』이다. 중국인들은 오늘날에도 풍수를 신봉하고 있어서 건물을 지을 때 풍수가의 역할이 건축가 못지 않을 경우도 있다. 1990년 9월 타이베이에 세워진 그랜드 하이얏트 호텔은 풍수사상을 살린 건축이라 해서 화제를 모았다. 홍콩에서는 하이은행의 47층짜리 빌딩이 풍수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설계단계에서 부터 저명한 풍수지리가가 달라붙어 갖가지 건축자문을 해줬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 풍수사상이 유입된 것은 삼국시대이며,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 풍수서가 저작되었다. 한반도 풍수지리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사람은 통일신라 말기의 선승 도선(道詵)이다. 도선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비보사상(裨補思想)으로서 중국과 다른 한반도 풍수지리의 특성이다. 즉 주어진 땅의 지기에 의지해서 살 뿐만 아니라 나무를 심거나 사찰과 탑 등의 입지를 통해 적극적으로 땅의 지기를 인간의 삶과 조화 되도록 하는 것이 비보로서, 고려시대에는 비보 문제를 전담하는 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이 만들어 지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풍수지리가 시작되었다. 태조는 왕조의 정통성 문제를 민중들의 사고 속에 깊이 뿌리내리려고 풍수지리를 이용해 정면 돌파했다. 지기가 왕성한 한양에 새로운 나라를 세워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 앞날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 안정을 도모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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