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달굴 정치영화
한여름 달굴 정치영화
  • 승인 2004.07.1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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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시장에 나온 영화 한편이 대선 전이 한창인 미국의 정치판에 강진을 일으키고 있다. 괴짜 감독 마이클 무어가 작심하고 만든 ‘화씨 9/11’ 은 처음부터 부시 때리기다. 석유이권을 놓고 부시 대통령 부자와 사우디왕가 사이에 맺어진 끈끈한 관계가 이락 전쟁의 동기라고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영화라면 오금을 못쓰는 할리우드 나라에서 영화 상영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하리만큼 공화당의 재집권 가도에 재를 뿌리고 있다.

기록영화가 말하는 내용은 이미 귀청이 아프도록 들어온 이야기인데 들불처럼 번지는 영화의 폭발력이 놀랍다.

개봉하자 첫 주말부터 기록영화 사상 최고 기록을 깼다. 색스와 난폭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미성년자 관람불가로 찬물을 끼얹었지만 영화관마다 매진이었다. 영화가 끝나자 객석이 들떠 기립 박수를 치는 극장도 있다.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이미 회오리가 불기 시작했다. 이대로 간다면 미국에서 입장료 수입만 1억 달러 기록을 돌파 할 조짐이다.

하지만 대박은 달콤하나 국론분열이 문제다. 보수파들은 무어감독을 여론조작의 명수였던 나치정권의 선전상 괴벨스에 비유하여 몰아 세운다. 이 영화에 돈을 댄 디스니사는 진작에 배급에서 발을 뺏다. 디즈니가있는 플로리다 땅은 부시의 동생이 주지사가 아닌가.

광고비를 1000만 달러도 안 썼는데 사람을 영화관으로 빨아들이는 것이 신통하다. 미디어가 경쟁적으로 알아서 광고 해 준 때문일까. 이처럼 돈 안들인 영화도 드물다. 9/11의 현장인 세계무역센터가 쓰러지는 장면은 사운드 뿐 그림은 비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코미디보다 웃기고, 정치사설보다 짜릿하여 객석에서 흑흑 눈물 짜는 소리가 난다.

몇 가지 사실과 눈물을 오묘하게 배합한 것이 관객의 마음에 와 다았다고나 할까. 무어감독이 더부룩한 거구에 빗질 않은 머리를 운동모자로 누르고 이락 전에서 자식을 잃은 모정(母情)과 인터뷰한 것이 고작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쓰레기통속에서 나왔을법한 필름 조각들을 몽타쥬하여 천재적으로 짜 맞췄다. 주연이며 조연 배우도 모두 공짜다. 하지만 장관 급이다. ‘독수리야 날아라‘를 열창하는 애쉬코프트 법무장관과 침을 발라 머리를 빗는 월포비츠 국방차관의 연기가 압권이지만 9/11이 터지던 그 순간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부시를 카메라가 놓치지 않은 것이 특종 감이다. 비서실장의 급보를 받고도 ’귀염둥이 염소‘ 동화책을 읽으며 대통령이 7분간이나 지척댄 것은 ”어떡하지, 사우디는 봐주어야 할텐데“를 머리 속에 굴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엄청난 창의력이다. 감독 스스로 해설하고 스크린에 뛰어들기도 한다. 의사당 앞에서 의원들을 붙들고 “전쟁이 끝나기 전에 애국하세요“라며 모병 팜플릿을 건넨다. 535명이 넘는 상하 양원의원 중 제 자식을 전장에 보낸 의원은 단 한 명 뿐 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의 영화가 선거 판을 뒤엎을 수 있을까. 무어감독은 이미 가장 강력한 로비스트 집단인 미 총기협회(NRA)를 겨냥한 기록 영화를 만들어 오스카상까지 받았지만 미국의 총포문화는 끄떡도 않고 있다. 이번에는 개인이 국가와 맞붙어 대중 이미지를 겨루는 홍보전의 신기원을 보여 주고있다. 용기 있는 졸병이 군 통수권자를 상대로 온갖 날카로움과 해학을 동원하여 누가 옳은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화씨 9/11’은 누구를 위한 영화인가를 묻고있다. 선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영화인가는 중요치 않다. 부동표가 한쪽으로 휩쓸리던 보수층의 지지 기반이 흔들리던 선거의 당락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전쟁 중에 국내에서 군 통수권자가 공격을 당하고있는 점이다. 갈라진 여론으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영화 한편으로 달구어지고있는 미국의 뜨거운 여름이 대한민국에게 남의 일이 아니다.

최규장<재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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