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자리> 봄이 없는 나라
<삶의 자리> 봄이 없는 나라
  • 승인 2004.07.1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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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봄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 네팔은 봄이 없는 나라입니다. 수도 카트만두는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날씨이지만 겨울이 지나면 바로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으로 들어갑니다. 이 나라는 난방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는 나라입니다. 겨울에도 판자 침대에 솜이불만 덮으면 끝인 것이고 너무 추울 때에는 숯불 화로에 몸을 녹이는 정도입니다. 나뭇가지나 소똥을 말려 불을 피워서 밥을 지으면 그 주위에 모여 앉아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눕니다. 각자의 따뜻한 방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서로를 폐쇄시키는 문명인들보다는 어쩌면 이것이 더 인간적인지도 모릅니다.

 히말라야 고산지대는 낮에는 반팔을 입을 정도로 따뜻하지만 해가 떨어지면 바로 매서운 바람이 불어 닥치는 겨울로 들어갑니다. 한국의 따뜻한 봄의 훈풍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기야 한국도 지금은 봄이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겨울의 추위가 지나면 그래서 뼈에 시리는 차디찬 바람이 지나가 버리면 이내 여름의 더위가 찾아와 봄기운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한국도 아열대 기후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짙어집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봄이 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좀솜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포카라로 향합니다. 히말라야 설산은 스모그와 운무로 인해 그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현상은 똑같이 일어납니다. 이제 우리는 맑은 하늘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나라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포카라의 더위는 알아주어야 합니다. 등산화를 도저히 신을 수가 없어 샌들을 하나 샀습니다. 어지간히 더워도 등산화 정도는 신을만 하였는데 그래도 나는 더위를 즐기는 축에 속하는 사람인데

 여기 포카라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포카라의 페와호수는 더위에 시들어 있습니다. 구름과 스모그로 인해 안나푸르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호수에 비친 안나푸르나의 모습은 그림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가을에나 찾아와야 참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아쉬움만 남는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입니다. 우리는 비 내리는 페와호숫가를 걸어서 한국인이 경영한다는 천지 가든을 찾아갑니다. 페와호수에서 잡았다는 장어구이를 맛봅니다. 이런 자연산 장어구이는 한국에서 맛보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포카라는 옛날의 마을이 아니었습니다. 9년 전에 찾아온 포카라는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오늘의 포카라거리는 끝이 없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글쎄, 여기에서 어찌 히말라야의 영성이 나올 수 있을지….

  나는 그것이 자신이 없습니다. 포카라에서 몇 일 정도를 보내고 싶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히말라야의 설산이 보이지 않는 여기에 그렇게 오래 머물기에는 우리의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우리는 서둘러 카트만두로 돌아옵니다. 돈도 떨어지고 덥기는 하고 별로 재미도 없을 것 같습니다. 카트만두의 더위 속에서 우리는 몇 일을 보냅니다. 동물 제사의 현장 더친 칼리도 경험하고

장작더미에서 화장하는 현장도 경험합니다.

그 더위 속에서 가운을 입고 졸업식에 참석합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졸업식이 끝나니 온몸은 땀으로 목욕을 합니다. 세미나도 시들합니다. 생기와 은혜가 넘치는 진리의 현장이 그리워집니다.

 카트만두는 어디를 가나 매연과 먼지의 현장입니다. 힌두와 우상의 열기가 도시 전체에 가득합니다. 거리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검문을 합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잘도 살아갑니다. 여기는 봄이 없는 나라입니다. 여기는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에베레스트의 설산이 그리워집니다. 랑탕의 히말라야가 보고 싶어집니다. 그래, 역시 히말라야는 가을이 제격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 춥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매일이 너무 힘들다고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추울수록 히말라야의 푸른 하늘이 드러나는 것이고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히말라야의 장미는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윤종수<히말라야 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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