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121>“예? 떠나라구요?”
평설 금병매 <121>“예? 떠나라구요?”
  • <최정주 글>
  • 승인 2004.07.21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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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문의 법칙을 넘어 <34>

미앙생이 철비의 손에서 춘화도를 빼앗아 들었으나 그건 벌써 붙여서 볼 수도 없을만큼 자디 잔 조각으로 변해 있었다.

“물어내십시오. 제가 이걸 구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쓴 줄 아십니까?”

미앙생이 눈까지 부릎 뜨며 대들었다. 그러나 그건 철비에게 다시 한번 몽둥이를 휘두르게 하는 빌미가 되었다.

“머라고? 이놈아. 내가 몽둥이로 때려서라도 네 놈의 머릿 속에 가득차 있는 더러운 생각을 몰아내야겠구나.”

“아이고, 장인 어른. 따님을 사랑한 것도 죄가 됩니까? 세상천지에 사위를 이토록 모질게 때리는 장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이고, 나 죽겠네. 아이고, 내가 허리병신이 되겠네.”

미앙생이 땅바닥을 데굴데굴 딩굴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고, 옥향이 그런 미앙생을 감싸 안 듯이 안고 철비를 눈물어린 눈으로 올려다 보았다.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서방님 앞에서 옷을 벗지 않을 것이니,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미앙생을 깔고 앉은 채 옥향이 두 손을 싹싹 비볐다. 그 모습을 한심어린 눈으로 내려다 보던 철비가 몽둥이를 홱 던지고 돌아섰다.

“미앙생은 내 방으로 오너라.”

“아이고, 아파라. 아파서 한 걸음도 못 걷겠습니다.”

미앙생의 말에 철비가 눈살을 꼿꼿이 세우고 돌아보았다.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지금 가지요, 머. 까짓 것 죽기 아니면 살기겠지요. 설마 사위를 죽이는 장인이야 있겠습니까?”

미앙생이 멀쩡한 입으로 아이구구, 나 죽겠네, 하고 엄살을 부리며 철비를 따라갔다.

“자네, 내 집을 떠나게.”

큰 채 거실의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자 철비가 말했다.

“예? 떠나라구요?”

미앙생이 큰 소리로 되물었다.

“차라리 개나 돼지를 기르지, 자네같은 짐승에게 내 밥을 축내게 할 수는 없네.”

철비의 말에 미앙생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좋습니다. 떠나겠습니다. 저도 가문의 법칙을 지키면서까지 이 집에 더 있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허나, 제가 한번 떠나면 다시는 옥향이를 만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상관없네. 옥향이도 짐승과 사는 것보다는 나을걸세.”

“정말이십니까?”

미앙생이 눈을 크게 뜨고 철비를 올려다 보았다. 다시는 옥향이와 만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은 혼인을 무효로 만들겠다는 뜻인데, 상관없다는 것은 옥향이를 생과부로 만들겠다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난 헛소리는 않는 사람일세. 지금 당장 떠나게. 단 한순간도 짐승과 함께 있기는 싫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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