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126>색으로 망할 놈같으니라구
평설 금병매 <126>색으로 망할 놈같으니라구
  • <최정주 글>
  • 승인 2004.07.27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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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문의 법칙을 넘어 <39>

“저런 땡중이 무슨 도사냐? 도사는. 어서 가자.”

미앙생이 서두르는데, 스님이 다시 말했다.

“족제비가 말을 타고가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구나.”

이번에는 장굉이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미앙생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서방님더러 족제비라는데요.”

기왕 장굉이까지 알아들었다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왜 멀쩡한 사람을 두고 족제비라고 하는지 그 까닭이라도 알아야했다.

“이보시오, 스님. 제가 왜 족제빕니까?”

말에서 훌쩍 뛰어내린 미앙생이 여차하면 주먹질이라도 할 기세로 눈을 부라리며 다가갔다.

“족제비 주제에 날 칠 생각이구나, 이놈이.”

스님이 발목이라도 삐었는지 손으로 발을 잡고 주무르며 낄낄 거렸다.

“왜 제가 족제비라는 말입니까? 아무리 승복을 입었다지만, 멀쩡한 사람한테 족제비라고 해도 되는 것입니까?”

미앙생이 씩씩거렸다.

“이놈아, 잔소리 말고 내 발목이나 고쳐내거라.”

“제가 왜 스님의 발목을 고쳐줍니까?”

“이놈아, 네가 내 발목이 삐라고 주둥이를 놀렸지 않느냐? 그러니 네 놈 탓이 아니더냐?”

“네? 스님이 그걸 어떻게. 제가 한 말을 알아들으셨습니까?”

그제서야 미앙생이 깜짝 놀라 털썩 주저 앉았다. 예사 스님이 아니구나, 싶었다. 객잔 앞에서 스님더러 발이나 삐라고 한 것은 말이 아니라 혼자만의 중얼거림이었다. 바로 곁에 있는 장굉이도 못 알아들을만큼 작은 소리였다. 그때 스님은 분명 쉰 걸음은 떨어진 골목을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귀가 밝은 사람이라도 고함이나 지르면 모를까 알아들을 수 없는 거리였다.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미앙생에게 스님이 말했다.

“색에 빠졌다가 쫓겨난 꼴이 참 볼만하구나.”

“제가 장인 어른께 쫓겨난 것도 알고 계십니까? 혹시 제 장인을 알고 계십니까?”

“이놈아, 네 얼굴에 다 써 있어. 색으로 망할 놈같으니라구. 기왕에 인연이 있어 만났으니, 차나 한 잔 마시자꾸나.”

스님이 혀를 쯧쯧차다가 바랑에서 차를 끓일 도구들을 주섬주섬 꺼내었다.

“다기를 가지고 다니십니까?”

미앙생이 물었다.

“난 공양은 안 먹어도 살지만 차를 안 마시면 하루도 못 산다네. 이보거라, 찻물은 네 놈이 끓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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