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127>어디 한번 내게 안겨보거라
평설 금병매 <127>어디 한번 내게 안겨보거라
  • <최정주 글>
  • 승인 2004.07.28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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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문의 법칙을 넘어 <40>

“예, 스님. 이놈도 한 잔 주시는 것입죠?”

어차피 그건 제 몫이라는 듯 장굉이 선선히 나섰다.

“족제비의 시중이나 드는 청솔모같은 주제에 차가 당키나 하더냐?”

스님의 말에 장굉이 흐흐 웃었다.

“대사님의 말씀이 백번 지당합죠. 서방님이 족제비라면 이놈은 청솔모가 틀림없죠, 흐흐흐.”

“그놈 참, 말이 청산유수구나. 데리고 다니면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헌데, 자네 이름은 무엇인가?”

“미앙생이라고 합니다.”

가까이서 보니까 어쩐지 보통 스님이 아닌 것 같아 미앙생이 고개까지 조금 숙이며 대꾸했다.

“미앙생이라, 자네에게 썩 어울리는 이름이군. 난 사람들이 고봉대사라고 한다네.”

“그러십니까? 고봉대사님. 헌데, 저한테 자꾸만 족제비라고 하신 까닭이 있으신지요? 제 얼굴이 족제비처럼 생겼습니까?”

“아닐세, 얼굴이야 영락없는 사람이지.”

“그런데 어찌?”

“잘 보게, 내가 자네의 전생과 금생은 물론 후생의 모습까지 보여주겠네.”

그렇게 말한 고봉대사가 손뼉을 짝짝치며 미앙생의 전생과 금생, 그리고 후생은 현신하거라, 하고 주문을 외우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족제비 한 마리가 느닷없이 숲에서 튀어나와 고봉대사의 무릎에 덥썩 앉는 것이었다.

‘도가 높기는 높은 스님이구나. 족제비를 불러내는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을 하며 미앙생이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족제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족제비의 맑은 두 눈 속에 자신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가끔 담을 넘어온 족제비가 닭을 물고 도망가는 뒷 모습은 보았지만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자세히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다.

“어떤가? 자네를 닮지 않았는가? 어쩐지 친근감이 들지 않은가?”

고봉대사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글쎄요.”

미앙생이 얼버무렸다. 그런데 고봉대사의 말처럼 족제비가 무척 낯이 익었다. 어제도 만났고, 그제도 만났던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오라고 손짓하면 스스럼없이 다가와 안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나에게 올 수 있느냐? 네가 삼생의 나라면 어디 한번 내게 안겨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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