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128>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
평설 금병매 <128>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
  • <최정주 글>
  • 승인 2004.07.29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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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문의 법칙을 넘어 <41>

미앙생이 족제비를 향해 소리는 내지 않고 마음으로만 속삭였다. 그러자 족제비가 몸을 일으키더니, 훌쩍 뛰어 미앙생의 무릎 위에 털썩 올라 앉았다.

“내 말이 맞지? 자네가 마음으로 부르는 소리만 듣고도 족제비가 자네한테 가지 않은가?” “참으로 신기하군요. 이제야 대사님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족제빌까요? 더 좋은 동물들도 많고, 기왕이면 사람으로 태어나야지요.”

미앙생이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이 사람이 꿈 속을 헤매고 있군. 자넨 지금 사람인가? 족제빈가?”

“그야 사람입죠.”

“그럼 됐지 않은가? 아무리 족제빌망정 사람의 탈을 쓰고 살고 있으면 자네 뜻대로 된 것이 아닌가? 족제비로 살아야할 자네를 사람으로 만든 분은 따로 계시다네”

“그 분이 누구십니까? 제가 만나 뵙고 절이라도 올려야겠군요.”

“허나 자네가 만날 수 없는 분일세.”

“왜 그렇습니까?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분이라면 천리 밖이건 만리 밖이건 찾아 뵙고 절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저도 그만한 도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백년 전에 살고 가신 분이니까 만날 수가 없지.”

“에이, 그런 엉터리 말씀이 어딨습니까?”

미앙생이 흐흐흐 비웃음을 흘렸다. 고봉대사가 산짐승을 부르는 재주를 자랑하느라 족제비 한 마리를 불러놓고 자신을 우롱하고 있다고 여겼다.

“역시 자넨 족제비 노릇 밖에 못하는군. 원래 족제비는 의심이 많지. 사람들은 그걸 족제비가 영리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지만, 족제비가 의심이 많기 때문에 사람이 놓은 덫에 잘 걸리지를 않는다네. 자네가 사람답게 살려면 우선 미앙생이라는 이름부터 바꾸게.”

“이번에는 제 이름을 가지고 트집이십니까? 제 이름이 어째서요?”

“유명한 시에서 따온 그럴듯한 이름이기는 해도 자네가 낮보다 밤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은 이름도 한 몫 했다네.”

고봉대사의 말에 미앙생이 흠칫 고개를 들었다. 명색이 글을 읽고 시문을 짓는다는 자신이 청루의 기생들이나 찾아다니고, 신부를 맞이하여서는 처갓집의 법도를 지키지 못해 쫓겨난 한심한 꼴을 고봉대사가 다 알고 있구나, 싶어 얼굴이 확 붉어졌다.

“자네도 색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군.”

고봉대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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