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129>임자있는 여자와 잠자리
평설 금병매 <129>임자있는 여자와 잠자리
  • <최정주 글>
  • 승인 2004.07.30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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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문의 법칙을 넘어 <42>

“아닙니다. 전 세상에서 색이 가장 좋습니다. 여자를 안고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쯧쯧, 색이 자네를 망칠걸세. 인과응보의 죄를 받을 걸세.”

고봉대사가 혀를 쯧쯧 찼다. 그때 장굉이 주전자에 끓인 물을 가지고 왔다. 고봉대사가 다관에 찻잎을 한 줌 넣고 물을 부었다. 잠시 기다리다가 그걸 찻잔에 따라 주면서 고봉대사가 말했다.

“마시게나. 정력에는 그만인 운무고치라는 찰세.”

“그래요? 더욱 반갑군요. 사실 전 정력에는 어떤 사내보다 자신이 있습니다만, 정력은 좋을수록 좋은 것이 아닙니까?”

미앙생이 농담처럼 흘리며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는 차의 쓰디 쓴 맛에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정력에 좋다는 고봉대사의 말만 아니라면 그냥 뱉아버리고 싶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고봉대사가 말했다.

“미앙생, 자넨 색으로 망할 사람이 분명하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앙생이 차를 꿀꺽 삼키고 물었다.

“방금 자넨 운무고치의 쓴 맛에 뱉아버리려고 했었지? 그러다가 그 차가 정력에 좋다는 말을 떠올리곤 그냥 삼켰지 않은가? 자넨 정력에 좋다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야. 업보를 짓지 말게. 더구나 임자있는 여와는 절대로 업보를 짓지 말게. 자네가 임자있는 여자와 잠자리를 할 때에 자네 부인도 다른 남자와 잠을 잔다는 것을 알게.”

고봉대사의 말에 미앙생이 흐흐흐 웃었다. 장인 철비가 떠올라서였다. 수컷이라면 하다못해 파리 한 마리도 옥향의 근처에 못 오게 했다는 장인 철비가 색을 탐한다고 사위까지 몽둥이질을 해서 내 쫓았는데, 다른 사내가 옥향의 근처에 얼씬거리게 하겠는가? 하늘이 무너져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미앙생은 믿었다. 그러자 갑자기 장인 철비가 믿음직스러워졌다. 언제 다시 옥향을 만나게 될지 아니면 세상을 떠돌다가 더 좋은 여자를 만나 까맣게 잊고 살지는 모르지만, 색을 철저히 멀리하는 장인 철비가 고맙기까지 했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웃음이군. 하지만 업은 쌓은대로 돌아오는 것일세. 내 말을 부디 명심하게.”

고봉대사의 말에 미앙생이 흐흐흐 웃는데 어쩐지 무릎 위가 허전했다. 손으로 더듬어 보니,방금까지 무릎에 앉아있던 족제비가 만져지지 않았다. 고봉대사한테 갔는가 싶어 살폈으나 보이지 않았다.

“대사님, 족제비는 어디로 갔죠?”

“무슨 소린가? 족제비라니?”

고봉대사가 눈을 꿈벅거렸다.

“아, 대사님이 불러서 제 무릎에 앉아있던 족제비 말입니다. 방금까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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