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130>색을 탐하는 자네, 허깨비같은 삶일세
평설 금병매 <130>색을 탐하는 자네, 허깨비같은 삶일세
  • <최정주 글>
  • 승인 2004.08.01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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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문의 법칙을 넘어 <43>

미앙생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장굉이 한 마디 했다.

“족제비라닙쇼? 서방님. 저도 족제비는커녕 다람쥐도 못 보았는걸요.”

“머야? 하면 내가 허깨비를 보았다는 소리야?”

“허깨비를 보았지. 색을 탐하는 자네의 삶은 분명 허깨비같은 삶일세. 내 말 명심하게. 인과응보는 무서운 것이라네.”

말을 마친 고봉대사가 주섬주섬 다기들을 바랑에 챙겨 넣고는 몸을 일으켰다. 미앙생이 몇 마디 더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그럴 틈도 안 주고 나무 숲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장굉아, 너도 정말 족제비를 못 보았느냐?”

미앙생이 다시 한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니요. 대사께서 서방님은 족제비이고, 이놈은 청솔모라고 하신 말씀은 들었지만요.”

“대사는 무슨 대사, 얄팍한 말재주로 시주나 얻고 다니는 땡중이지.”

미앙생이 애꿎은 고봉대사한테 욕지기를 내뱉었다.

고봉대사와의 만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허깨비처럼 자신의 무릎에 앉았다 간 족제비 때문이었을까. 산을 넘는 동안 미앙생의 얼굴빛은 어두웠다.

그런 미앙생을 장굉이 위로했다.

“신경쓰지 마세요, 서방님. 어쩌면 진짜 땡중일지도 모르니까요. 그까짓 전생이 족제비면 어떻고 청솔모면 어떻습니까? 저녁에는 근사한 술판을 벌일 것이지요? 무서운 철비 어른도 안 계시는데 그냥 말 수는 없잖아요. 홍주 몇 잔 마시고 계집을 품고 있으면 족제비같은 생각은 다 사라질걸요.”

“그러자꾸나. 장인도 없는데 내가 가문의 법칙을 지킬 까닭이 없지. 저녁에는 너한테도 계집을 하나 안겨주마.”

미앙생이 선심을 썼다. 그런데 장굉이 고개를 내저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전 사양하겠습니다. 정조를 지키기로 약속한 여자가 있습니다.”

“머야? 너한테 여자가 생겼다고? 누구냐?”

미앙생이 묻자 장굉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철비 어르신댁 이웃에 연비라는 여종이 있습지요. 절 한번 보더니, 실실 웃길래 하룻 저녁 만나 옷을 벗겼는데, 처녀였지 멉니까요. 웃음이 헤푼 여자는 아래도 헤푸다고 하잖던가요? 그래서 전 연비도 그런 하찮은 계집이거니 했는데, 나이 스물이 넘도록 정조를 지키고 있지 머예요. 그래서 저도 다시는 연비 말고 다른 여자와는 잠자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구만요.”

“약속이란 원래 어기기 위해서 있는 것이야. 특히 남녀간의 약속은. 안 그러느냐? 세상에 넘쳐나는 것이 여자고 남자인데, 어찌 한 남자, 한 여자만 바라보며 산다는 말이냐?”

“암튼 전 싫구만요. 서방님이나 실컷 재미를 보세요. 서방님까지 말리지는 않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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