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알겠다. 어제 밤에 그냥 잤더니, 몸이 찌부듯하구나.”
미앙생이 하품을 했다. 비록 말을 탔다고는 해도 말등에 앉아 흔들거리며 온 백리 남짓한 길은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두 사람이 그럴듯한 청루를 찾아 현청이 있는 거리를 기웃거리고 다닐 때였다. 미앙생의 눈에 뒷산 도라지꽃같은 여자가 하나 스쳐갔다. 그 여자는 대장간에서 풀무질을 하고 있었는데, 소매 끝으로 뜨거운 불기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느라 고개를 뒤로 젖히다가 미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여자와 눈길이 마주치는 눈깜짝할 순간 미앙생이 헉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철이 들고 계집들과의 재미를 알고 난 다음에 숱하게 많은 여자를 만났지만, 대장간의 여자처럼 미앙생을 한 눈에 사로잡은 여자는 없었다. 미앙생은 대장간 여자가 자기를 보고 분명 웃었다고 믿었다. 하얀 이를 반만 드러내고 웃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분명 보았다고 믿었다.
오금이 저리고 가슴이 사정없이 떨린 미앙생이 장굉에게 말을 멈추도록 지시했다.
“왜요? 서방님. 날도 다 저물어가는데 서둘러 청루건 객잔이건 찾아 들어가야지요.”
“이놈아, 잔소리 말고 멈추라면 멈추거라.”
“그래얍죠. 멈추라면 멈추어야지요.”
장굉이 말고삐를 잡아챘다.
말에서 내린 미앙생이 말했다.
“은자 한냥을 나한테 맡기고 넌 그럴듯한 청루를 찾아보거라. 내가 저 대장간에서 볼 일이 있으니까, 청루를 정해놓고 다시 오너라.”
“은자는 어따 쓰시려구요?”
“내 돈을 내가 쓰겠다는데, 네놈한테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하느냐?”
미앙생이 눈을 부라렸다.
“그것은 아닙지요만, 언젠가처럼 이놈이 서방님 본댁에 술값을 가지러 갈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어서 그러만요.”
“흐, 그 놈 참, 걱정도 팔자구나. 아, 얼른 내놓지 못해?”
“여깄구만요. 하면 저는 청루를 찾아 보겠구만요. 돈 잘 쓰십쇼.”
장굉이 투덜거리며 은자 한냥을 내주었다. 전대가 아직도 불룩한 걸 보면 몇 달간은 흥청망청 써도 될만큼 노자는 많이 남아있는 셈이었다.
‘빌어먹을 놈, 오냐오냐했더니, 아예 기어오르는군.’
속으로 중얼거리며 미앙생이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풀무질을 하던 여자가 먼저 고개를 들었고, 벌겋게 닳아오른 불덩이에서 집게로 쇠붙이를 들어내고 있던 산적 두목처럼 생긴 사내가 돌아보았다. 미앙생의 노리로 도라지꽃같은 여자한테는 참으로 안 어울리는 사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