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의 존폐 여부를 묻는다.
사형제도의 존폐 여부를 묻는다.
  • 승인 2004.08.0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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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혀 세상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감과 사람을 두려워하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흔히 흉악범의 잔인성을 일컬어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 하지만, 어느 짐승이 동류의 종족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살육할 수 있을까?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인면인심(人面人心)의 잔혹성이 몸서리를 치게 한다.

 범행을 전하는 뉴스마저 보고 듣고 말하기가 역겹다. 인간이 인간에게 취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예의마저 무시한 냉혈적 잔혹성이 보통사람의 심장을 얼어붙게 한다. 그런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 스스로 그런 범인과 동류의 인간이라는 사실에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이것은 아무 까닭 없이 죽어간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이자 인간적 염의(廉義)의 발동 때문일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할말을 잊는 자괴심(自愧). 그래서 인간이 아닌가.

 흉악범의 잔혹한 범행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이를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격앙되어 있다. 범인에 대한 상응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안정을 위해서 흉악범을 극형으로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흉악범을 다스리고 그런 범죄가 재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형제도 같은 극형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단순화한다.

 이럴 때, 사형제도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성적인 목소리는 한껏 볼륨을 낮춘다. 행여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기나 하는 것은 마치 흉악범을 옹호라도 하는 것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군중심리와 보복적 앙갚음의 정서가 격앙되어 이성적인 이의 제기를 어렵게 한다. 흉악범이 무법(無法)을 무기로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면, 사회는 형법(刑法)을 무기로 유고한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형 제도를 둘러싼 논쟁이 안고 있는 보다 본질적인 여러 가지 관점을 간과하는 문제가 있다. 범행을 단죄하기 전에, 흉악범죄를 막는데 과연 어느 제도가 더 효과적인가를 심층 분석하는 것이 앞서야 하지 않겠는가? 천부의 인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사형제도의 직접적 당사자라고 볼 수 있는 피해자나, 가해자나, 형 집행자가 지니고 있는 천부의 인권을 보호하자면 어느 제도가 더 문명적인가를 따져 보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범인을 사형이라는 제도로 제거한 뒤에 사형제도의 존폐여부를 묻는 것은 난센스다.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모순과 자기 함정을 피해가는 데 어느 제도가 더 효율적인가를 따지는 것은, 만에 하나 있을 지도 모르는 오심과 오판으로 인한 사법적 살인을 예방하는 절차적 행위이자 인간적 겸손의 미덕이다. 나아가 사형 제도를 둘러 싼 논쟁은 종교적 신앙적 관점에서 어느 제도가 보다 인간의 영적 생활에 기여하는가에 대한 탐색이자 자기검열의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범죄는 일정한 사회적 환경이 낳은 결과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모든 죄는 범인에게만 있고, 범인을 품어 안고 살았던 사회나, 그와 이웃이었던 나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인가? 격앙된 보복 심리로는 이런 사회적 장치에 대한 검열과 인간적 결함에 대한 성찰을 무산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복수는 쉽다. 9.11 테러로 수많은 국민을 잃은 미국처럼. 그러나 미국이 선택한 복수가 그 방법이나 대상에서 합당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바로 내가, 우리 민족이 그런 무고한 보복의 대상이 된다면 그때는 무엇이라 항변할 수 있겠는가.

 단죄는 쉽다. 흉악범이나 국가사범을 공개처형(총살)하는 중국처럼. 그러나 중국에서 흉악범이나 국사범이 감소하거나 사라졌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오히려 이십 일 세기 반문명적인 중국의 처형제도를 비난하는 여론이 높다.

 흉악범을 극형으로 단죄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마음 안의 빗나간 복수심의 발로가 아닌지 성찰할 일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의 살상을 금하는 불심(佛心)이나, 자기를 죽인 자를 용서했던 예수의 마음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한 복수인지를 성찰하게 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사형제도의 존폐여부를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 복수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이동호 (국민생활체육 전국우슈연합회장·이동호내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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