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차별로부터의 해방
장애·차별로부터의 해방
  • 승인 2004.08.0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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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의 역사적 의미는 한마디로 일제치하의 식민적 상황으로부터 해방과 독립이다.

59주년 광복의 달을 맞아 아직도 일제치하 만큼이나 혹독하고 참담한 차별에 직면해 있는 우리들의 광복 즉 해방과 자립의 참된 의미를 생각해 보자.

장애인 해방은 흔히 생각하고 있는것 처럼 장애의 경감이나 극복 즉, 장애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 한다. 그것은 예컨대 아무리 중도의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그 장애로 인해 차별되거나 부정되는 일이 결코없는 것을 의미하며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의 생활방식을 당당하게 보여주면서 살아가고 투쟁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장애인 해방의 참된 내용은 무엇일까?

첫째로 장애인 자신이 자립하는 것이다. 장애인 자신이 자립한다고 하는것은 흔히 생각하듯이 단순히 경제적 또는 물질적 측면만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컨대 장애인 자신이 자기의 삶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모든 형태의 차별과 억압에 대해 장애인으로서의 입장을 분명하게 제기함으로써 주체적으로 살아감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정책이나 운동의 영역에서 말하자면 장애인 자신의 자기결정권과 자주결정권의 실현을 의미하며 기타 생활등의 영역에서 말하자면 장애인 자신의 주체성의 확립을 의미한다.

제도적 대책이나 타인의 은총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은 의존적인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

사실 오늘날 모든 국민적 합의를 수반하고 있는 방향 즉 장애인 문제의 해결은 국가적 책임이자 국민적 과제라는 방향은 어디까지나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들이 처해 있는 역사적 질곡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해왔기 때문에 현실화 될수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장애인 자신이 한없는 동정과 체념에 머물러 있었다면 장애인문제의 해결같은 것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결코 말조차 끄집어 내지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로 장애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비장애인이 변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게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그런 윤리적 혹은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은 어떤 의미로나 형태로나 비인간화의 희생자가 되고 있으므로 모든 인간성의 파괴 그 자체가 철저하게 거부되지 않으면 않된다. 즉 장애인의 진정한 해방과 생존을 위해서는 비장애인 한사람 한사람의 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는 비인간성을 인간성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장애인에게 무엇인가를 지원해주거나 협력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인 특히 중도장애인의 생활방식과 생존양식에 접촉함으로써 비장애인 스스로가 인간의 삶과 존재양식의 다양성을 재인식하고 이해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장애인으로서의 생존 자체는 아주 힘겨운 것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존재양식의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는 요인이다.

셋째로 장애인의 자립 및 비장애인의 변화와 더불어 이 사회의 가치체계와 질서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혁되는 것이다. 장애인의 실존은 인간이 살고 있는 따라서 인간이 책임져야할 이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 전 영역에서 끊임없이 부당한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으며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혀 아무렇지 않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참으로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그런 일이 얼마나 커다란 범죄인지를 곧 깨닫게 될것이다.

장애인은 불완전하고 비정상적이며 인간이 아니라고 규정되어 있는 이시대의 차별적 가치체계와 억압적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혁되지 않는한 장애인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은 이루어 질 수 없다. 또한 장애인의 해방을 실현 할수 있기 위해서는 일하지 않는자는 먹지 말아야 하는것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일 할수 없는 자도 먹을 수 있는 것이 수용 될 수 있는 사회체제가 이루어져야한다.

이런 사회는 혹 유토피아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목표로 투쟁하는것을 단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단념한다는 것은 곧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차별에도 묵묵히 견뎌야만 함을 의미하며 그것은 결국 스스로의 인간적 생존을 파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실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랐고 하는 절규가 아직도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불변의 진리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완전히 갖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평가이다.) 사람들의 요구에만 응해왔으며 그런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는 어느 시대에나 장애인, 노인, 어린이 , 여성등과 같은 약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들도 모두 포함할수 있는 사회야 말로 진정으로 정상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정상화" 의 사상으로서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발상의 전환과 의식의 변혁이 필요하다.

차별로 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달성하는 길은 분명 험난하고도 고된 여정이다.

그것은 오직 투철한 의식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참다운 존재의 용기를 지니고 있는 장애인의 몫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평등한 권리"를 갖는 것은 결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광복의 쟁취에는 민족전체의 굽힐줄 모르는 저항과 수많은 독립투사도의 목숨을 건 투쟁이 있었듯이 차별로 부터의 해방과 자립 역시 장애를 긍정하고 차별을 부정하는 정신으로 싸워나갈때 쟁취할 수 있다.

송경태<전북장애인신문사 발행인·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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